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는 그냥 가볍게 읽기 좋은것 같다.

하지만 그 가벼운 이야기 안에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메시지가 들어 있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중 '거울 속의 저녁노을'을 읽고 어젯밤 빵~~ 웃음이 터졌다.

바자회 가서 말할 줄 아는 개와 아내를 바꿔왔다니... 발상이 너무 재미있었다.

옛날 일을 생각하는 주인에게 개가 말한다.

"옛날 일 따위 되짚어 봤자 비참해질 뿐이죠. 참 이해할 수가 없네. 비참한 인간이 꼭 더 비참해지려고 하니....."

개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우리는 정말 옛날 일을 되짚으며 더 비참해지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을지 모른다.

앞으로 좋은 추억 만들어 나가기에 짧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건 지도....

아쉬움이 남든다면 다시 용기내서 도전하면 되는거고... 

후회가 남지 않게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털어내면 되는거고...

그렇게 난 개의 말에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는(우리라 함은 물론 나와 개를 말한다) 아이들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오두막에서 나왔다.

내가 머리맡에 앉아 '1963년도 판 조선 연감'을 소리 내어 읽는 사이에(오두막에는 그것 말고 다른 책은 없었다)

아이들은 금세 잠에 빠져들어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총 배수량 23652톤, 전체 높이 37.63미터...." 따위의 문장을 주절거리고 있으면 설령 코끼리 떼라도 잠들어버린다.

"저, 주인어른." 개가 말했다. "산책이라도 하러 나가요. 오늘 밤은 달님이 무척 아름다워요."

"좋고말고."

이처럼 나는 말할 줄 아는 개와 생활하고 있다. 물론 말할 줄 아는 개는 극히 드물다.

말할 줄 아는 개와 살기 전에는 아내와 함께 살았다.

작년 봄 시내 광장에서 바자회가 열렸는데, 나는 거기서 말할 줄 아는 개와 아내를 바꿨다.

거래한 상대와 나 둘중 누가 이득을 보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아내를 사랑했지만, 말할 줄 아는 개는 그 무엇보다도 희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와 개는 강을 따라 비스듬한 언덕을 올라 그대로 숲으로 들어갔다. 때는 7월, 매미와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사방에

가득했다.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달빛이 오솔길에 드문드문 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걸으면서 나는 지나가버린

과거의 나날을 떠 올렸다.

"주인어른, 무슨 생각 하는데요?" 개가 물었다.

"옛날 일." 나는 대답했다. "젊었을 때 일"

"잊어버리세요" 개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옛날 일 따위 되짚어 봤자 비참해질 뿐이죠. 참 이해할 수가 없네. 비참한

인간이 꼭 더 비참해지려고 하니. 아시겠어요...."

"이제 그만해." 나는 말했다. 그러고는 잠자코 걸었다. 개는 주인에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아무래도 내가 개를 지나치게 오냐오냐 대한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 봄 바자회에서 또다른 무언가와 개를 교환하게 될 것이다.

아내를 되찾지는 못해도 하프를 켤 줄 아는 산양 정도는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개는 그런 나의 생각을 눈치챈 듯했다.

"그렇게 말할 생각은 아니었는데요." 개가 변명했다. "주인어른은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저만치 갔다가 돌아오자." 나는 말했다. "숲속의 밤은 무서우니까 말이야."

"정말 그래요. 숲속의 밤은 무섭죠." 개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밤의 숲속에서는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죠.

예를 들면 거울 속의 저녁노을이라든지..."

"거울 속의 저녁노을?" 나는 깜작 놀라 되물었다.

"그런 게 있어요. 오래된 전설이죠. 엄마 개가 강아지들을 겁주려고 할 때 흔히 하는 얘기에요."

"흐흠." 나는 웅얼거렸다.

"어때요. 이쯤에서 조금 쉬어갈까요?"

"좋고 말고." 나는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거울 속의 저녁노을 얘기를 좀더 자세히 들려주지 않을래?"

"내년 봄 바자회에 절 내놓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신다면요. 저, 이 나이에 또 개장에 갇혀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 않거든요."

"약속하지" 나는 말했다.

개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발에 묻은 흙을 나무뿌리에 비벼 털어내고서 천천히 얘기를 시작했다.

" 이 부근 개들은 다 아는 얘기예요. 이 드넚은 숲속 어딘가에 수정으로 된 작고 동그란 연못이 있대요. 수면은 마치

거울처럼 매끈매끈하고요. 그리고 거기에 늘 저녁노을이 비친다는 거예요.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늘 저녁노을이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글쎄요." 개는 으쓱했다. "아마 수정이 기묘하게도 시간을 빨아들이는 모양이죠. 정체 모를 심해어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그건 아주 위험하겠지?"

"네, 그 광경을 본 사람은 모두 거기로 뛰어들고 싶어진대요. 아무튼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운 저녁노을이거든요. 그리고

한번 뛰어든 사람은 영원히 그 저녁노을의 세계 속을 헤매다니게 되죠."

"그리 나쁘지 않은데."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개는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하지만 대개의 일들은 실제로 해보면 생각했던 것만큼

재미있진 않은 법이죠. 두 번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경우에는 더더욱이요."

"난 저녁노을 좋아해."

"참 나, 저는 뭐 안 좋아하는 줄 아세요."

한동안 나는 말없이 담배를 피웠다. "그런데, 넌 실제로 그.... 거울 속의 저녁노을이란 걸 본 적 있니?"

"아니요." 개는 고개를 저었다. "본 적은 없어요. 부모님에게서 얘기를 들었을 뿐이죠. 부모님은 또 그 부모님에게서 들었고요.

말했잖아요. 오래된 전설이라고."

"그걸 본 개는 없단 말이지?"

"그걸 본 개는 모두 그 저녁노을 속으로 끌려들어갔다니까요."

"알 것 같기도 한데"

"사람이건 개건 생각하는 건 얼추 비슷하죠." 개가 말했다. "자 이제 그만 돌아가요."

우리는 왔던 길을 되짚어 묵묵히 걸어갔다. 풀고사리 잎이 밤바람에 바닷물처럼 일렁이고, 새하얀 달빛 속에 꽃향기가

떠다녔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가까워졌다가는 멀어지고, 밤의 새는 금속 조각을 비벼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울었다.

"피곤하세요?" 개가 물었다.

"괜찮아." 나는 말했다. "기분이 아주 상쾌하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개는 말했다.

"그건 그렇고." 나는 말했다. "아까 한 얘기, 전부 네가 멋대로 꾸며닌 거지?"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왜....."

"괜찮으니까 사실대로 말해봐."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눈치채셨어요. 역시?"

"당연하지."

개는 떨떠름하게 웃으며 머리를 갈작갈작 긁었다. "그래도 재미나는 얘기였죠?"

"하긴." 나는 말했다.

"하지만 잊어버리면 안 돼요. 내년 봄 바자회 얘기 말이에요. 주인어른이 틀림없이 약속하셨으니까."

"알고 있어."

"개장 안에만은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개는 말했다.

우리는 오두막까지 남은 길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었다. 아무튼 달이 지독히도 아름다운 밤이었다.

 

 

 

 

Posted by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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