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정은 곧은 직선으로 뻗어 있고

어떤 여정은 빙빙 에두르는 길이다.

어떤 여행은 영웅적이고

어떤 여행은 두려움과 혼란투성이다.

하지만 모든 여행은

정직하게만 따르면

정확한 목적지에 닿는다.

 

 

 

 

언젠가 저 강물이 얼어붙는 날

스스로에게 물어 보기를

내가 어떤 실수를 저질렀는지

내가 한 일들이 곧 내 인생인지


사람들이 천천히 머리속에 떠오르네

어떤 이는 도움을

어떤 이는 상처를 주려 했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기를

그들의 지독한 사랑이나 미움이

어떻게 달랐었는지


나 그대의 말을 들으리

그대와 나 돌아서서

저 말없는 강물을 바라보며 기다릴 수 있으니

우리는 알고 있네

저 강물 속에, 흐르는 물살이 숨겨져 있음을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는 것처럼

침묵을 안고 수 마일을 흘러왔고 흘러갈 것을

저 강물의 말이 곧 나의 말임을

-윌리엄 스태포드 <스스로에게 물어 보기를>-



'최고의 진리와 가치가 당신의 삶을 이끌도록 하라.

매사에 최고의 진리와 가치를 기준으로 행동하라.'

당시 바로 그런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그 말의 의미를 더욱 구체화할 수 있었다.

나에게 "네 인생의 목소리를 들어 보아라"라는 말은 바로 마틴 루터 킹2세,

로자 파크스, 마하트마 간디, 도로시 데이처럼 숭고한 목표를 가진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나는 내가 찾을 수 있는 최고의 이상을 늘어놓고는 그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대부분 어처구니없는 결말이었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언제나 그 결과는 비현실적이었고 빈정한 나 자신을 왜곡하는 것이었다.

원인은 나의 내면에서 밖으로 뻗어나간 삶이 아니라 바깥세계에서 안으로 밀려들어온 삶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마음에 귀기울이기보다 영웅들의 인생을 흉내내는 '고상한' 길을 찾았던 것이다.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때 <파커J. 파머>-



"Let your life speak."

내게도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이기도 하다.

앞으로 인생이 나를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에 귀 기울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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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일때 우리의 뇌는 양육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발달했다. 양육자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거나

전달한 감정과 태도,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뇌의 성장에 반영된다. 원만한 양육환경 속에서

자랐다면, 부모님이나 양육자들이 우리의 기분이나 정서상태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보살펴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울고 웃으며 느끼는 것에 대해 적절히 답을 하고 반응해주었을 것이다.

따라서 두 살 정도가 되면 사람의 뇌는 이미 자기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패턴을 갖게 마련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좌뇌 역시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발육된다.

이런 이원적인 발달 덕분에 양쪽 뇌가 어느 정도 통합될 수 있는 것이고, 이때부터 우리는

비로소 좌뇌를 활용하여 우뇌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양육자들이 고의로, 혹은 무심코 아기의 기분을 무시하거나 그 기분에 대해

벌을 준다면 어떻게 될까? 그 시기에는 감정이 일어날 때 그 감정을 처리하는 능력이나 언어로

이해하는 능력을 배워야 하는데, 결정적인 시기를 놓쳐 제대로 연습하지 못하면 그런 능력이

아무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른이 된 이후에도 문제로 남을 수 있다.

그래서 유아기에 양육자들과의 관계가 정상적이지 못했거나, 유아기 이후에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어 안정상태가 깨진다면, 장차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될 확률이 커진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어떻게 이미 지나간

유아기를 되돌려 양육자와 더 행복한 시간을 갖고, 이미 겪어버린 트라우마를 피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지 않다도 방법은 있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지만, 경로를 변경하는

일은 가능하다. 심리치료사들은 '어떤 사람이나 문화의 특징들을 자신의 정신 속으로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두고 '내사(introjection)'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양육의 경험을

내사하여 유아기에 양육자들이 남긴 영향을 계속 떠안고 살아가는데, 그럼으로써 감정, 생각, 반응,

행동의 패턴들이 심화되고 고착된다. 그렇다고 이것을 무조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부모님이 좋은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 후에 우울증에 빠지거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면, 좀 더 온전한 정신을 갖고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그 패턴을 변경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렇다면 이미 익숙해진 생각들의 패턴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불행히도 절대적이고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만병통치약 같은 것은 없다. 옴짝달짝할 수 없는 꽉 막힌 삶에 점점

깊이 박혀버리거나, 반대로 더 압도적이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진다면(혹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경험하는 경우도 있다), 약물치료든 새로운 행동양식이로든 무엇이라도 해서 더 이상의

추락을 막아야 할 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새로운 행동양식'이라는 것은, 인생의 초점을 새롭게

맞추는 것일 수도 있고, 새로운 생각들이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무언가'로부터 도움을 얻는

일일 수도 있다(굳이 내가 이렇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우언가'라는 애매한 표현을 쓴 이유는,

어떤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심리치료 케이스들을 살펴보다 보면, 예외 없이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자기관찰(self-observation), 타인과 관계 맺기, 유익한 스트레스, 개인적인 내러티브(narrative)에 대해서

말이다. 이 네가지는 심리치료와 관계없이 우리의 삶에 활용해보면 좋은 것들이기도 하다.

온전한 정신을 지키고, 성장과 발전에 꼭 필요한 유연성을 갖도록 도와주는 이 네 가지 영역이,

지금부터 우리가 함께 이야기할 이 책의 주제다.

 

1. 자기관찰

소크라테스는 "반성하지 앟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 좀 극단적인 말이긴 하지만,

온전하고 지혜로운 정신을 갖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심판관 같은 태도를 버리고 먼저

자기를 제대로 관찰하는 능력을 꾸준히 키워야 한다. 내 경험에 따르면 자기관찰 능력은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기관찰 훈련을 하다 보면, 가정과 느낌, 생각이 일어날 때, 그리고 그 감정, 느낌,

생각이 기분과 행동을 결정할 때, 그것을 경험하고 인지하고 평가하기 위해 제3자의 시선을

가지게 된다. 이런 능력을 키우면 어려운 일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로운 태도를

가질수 있고 사사건건 판결을 내리려는 태도도 없앨 수 있다. 또한 스스로의 행동방식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생길 뿐만 아니라, 감정과 논리에 귀 기울이고 그 두 가지를 종합할 줄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온전한 정신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기관찰 능력을 최대한 키워 궁극적으로

자기인식(self-awareness) 능력을 높여야만 한다. 아마도 이것은 누구에게나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안는 숙제일 것이다.

 

2. 타인과 관계 맺기

누구에게나 의지를 북돋아주고 격려해주는 안전하고 믿음직한 인간관계가 필요하다.

물론 여기에는 연인도 포함된다. 좀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로맨스가 반드시

행복의 필수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성장을 촉진시켜주는 관계는 꼭 필요하다.

그 대상이 심리치료사이건, 혹은 선생님이나 연인, 친구, 자식 등 누구이건 간에,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 뿐 아니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고, 심지어 슬쩍슬쩍 자극을 주기도 하는

그런 관계가 필요하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만 온전히 존재하며, 지속되는 일련의 관계들을

통해 발전하고 변화한다.

 

3. 유익한 스트레스

올바른 스트레스는 긍정적인 자극을 준다. 그렇다면 과연 올바른 스트레스란 무엇일까?

새로운 것들을 배우면서 창의성이 발휘되도록 자극을 주되, 공황 상태에 빠지거나 일상이

뒤집어질 만큼 위압적이지는 않은 것, 그게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유익한 스트레스다.

또한 유익한 스트레스는 새로운 신경연결을 유도하는데, 이것은 인격의 발달과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4. 개인적인 내러티브

내러티브란, 말 그대로 서사, 서술, 줄거리, 스토리텔링 등의 여러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잘 안다는 것은, 필요할 때 그 이야기를 편집하고 바꿀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의 자아 중 상당 부분이 언어능력을 습득하기 전에

형성되는 탓에, 우리를 이끄는 신념이나 믿음들 중에는 자신조차 모르게 감추어진 것들도 있다.

한편, 우리는 "나는 ...한 사람이다."라거나 "그렇게 ㅎ는 것은 나답지 않아. 난 ...한 사람이 아니니까."

라는 식의 믿음들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바로 그런 자신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본다면, 스스로는 물론이고 타인들과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더 새롭고 더 유연하게

정의할 수 있게 된다.

 

비록 각자가 처한 환경이나 삶에서 벌어지는 사건, 그리고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방법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네 가지 영역은 누구에게나 온전한 정신의 토대가 된다.

 

- 인생학교 <정신>, 필립파 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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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혼란상태(chaos)에 빠져 휘청거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계속되는 삶의 위기들 때문에

정신이 없는 부류다. 두 번째 부류는 바퀴자국 같은 과거의 상처에 꽁꽁 묶인 채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쩔쩔매는 사람들이다. 물론 양쪽 모두에 속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독특한 유전자의 조합을 가지고 태어났고, 각기 다른 성장기를 겪었다.

그런 까닭에 좀 더 용감해지고 개방적인 성격이 되어야 할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자기억제라는 것을(늦었지만 이제라도) 새로 배워야 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타인을

신뢰하는 법을 좀 더 연습해야 할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나 무턱대고 믿어버리는 탓에 분별력을

좀 더 키워야 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또 다른 사람에게는

불행의 원천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유용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해로울 수도 있다.

우리의 뇌가 어떤 과정을 거쳐 발달했는지, 정신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 작동되는 원리는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생각의 방식과 감정변화의 패턴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삶의 방식까지도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뇌에 대해

이해하고 생각해보는 훈련 덕분에, 나뿐만 아니라 내 환자들은 스스로의 삶을 더 능숙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을 '두 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戰車)'에 비유했다. 전차의 기수가 이성(Reason)이라면

두 마리의 말은 각각 기개(spirit)와 욕망(Appetite)이라고 했다. 정신(mind)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와 비슷한 비유를 해왔다. 나 또한 그런 식의 접근법을 활용해, 현대의 신경과학이 밝혀낸 것들과

그 밖의 여러 심리치료적 접근법을 접목시켜보았다.

 

 


그렇다면 먼저 가장 안쪽에 있는 '뇌간'부터 살펴보자. 종종 '파충류의 뇌'로도 불리는 곳이다.

뇌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작동하며 반사작요와 심장근 같은 불수의근(不隨意筋)의 움직임을 맡고 있다.

또한 생명중추의 기능을 담당해 위험한 순간에 우리의 목숨을 구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손가락으로 우리의 눈을 찌르려고 하는 순간에도, 뇌간은 우리가 눈을 감게 만든다.

한마디로 뇌간은 소도쿠 같은 것을 풀 때는 도움을 주지 않지만,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단계에서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준다.

뇌간의 바깥인 중뇌에는 '포유류의 뇌'라고 불리는 변연계가 있다. '감정의 뇌'라고도 불리며,

인간의 감정과 인식, 기분 등을 담당한다. 인간을 비롯하여 모드 포유류들은 흥분하면 으르렁거리고,

공포를 느낄 때는 움츠리며, 애정을 표현하려고 꼬리를 흔들기도 하는데, 이 모든 감정적인 행동들이

바로 중뇌의 발달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진화한 것이 전뇌다. 전뇌는 '인간의 뇌'라고 불리며 이성을 담당한다. 학습, 기억력,

지력을 담당하고, 추론, 의사결정, 언어이해, 자발적 움직임 등의 지적 사고를 조절한다.

한편 우리의 대뇌는 자뇌와 우뇌로 나뉘어져 있고, 가운데에 위치한 뇌량이 다리 역할을 하며

자뇌와 우뇌를 이어준다. 흔히 알려진 바와 같이 좌뇌는 논리적이고, 순차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

말하기, 쓰기, 독서, 듣기(청각)를 관장하며, 언어, 논리, 추론 같은 조직적인 활동을 담당한다.

반면 우뇌는 불규칙적이고, 바조직적이며, 직관적이고 전체론적이다. 감정과 촉각으로 인식하고,

공간감각, 형태의 인식, 음악, 예술, 색감, 창의력, 시각화와 같은 비언어직인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우뇌와 좌뇌는 평생에 걸쳐 계속 발전하지만, 태어나서 다섯 살이 될 때까지 대부분의 발달이

이루어진다고 보면 된다. 각각의 뇌세포들은 혼자서는 아무일도 할 수 없다.

뇌세포들이 제기능을 수행하려면 다른 뇌세포들과 서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우리의 뇌는

일련의 발달과정을 통해 각 뇌세포들을 연결하는 신경경로(neural pathway)를 경로한다.

그런데 이런 뇌세포의 연결은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우리의

뇌 발달은 유전적인 요인보다는 유년기에 형성되는 인간관계와 더 깊은 관련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타고난 본성보다는 후천적 양육환경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이 사람과 저 사람이 다른 이유는, 대체로 아주 어린 시절에 겪은 일상적인 경험들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상 우리의 경험이 뇌의 문제를 결정짓는 셈이다.

 

생후 2년 동안 우뇌는 아주 활발하게 움직이는 반면, 좌뇌는 잠잠한 상태에서 그다지 활동성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뒤로 몇년 사이에 발달의 양상이 뒤바뀌어, 우뇌의 발달은 둔해지고

좌뇌는 괄목할 만한 활동의 시기에 돌입한다. 우뇌에 깔리게 되는 신경경로는 유아기에 만들어지는데,

그 토대는 타인들과의 유대나 형성이나 결합의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타인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스스로에 대해 전반적으로 얼마나 편안하게 느껴지는지,

기분이 상한 후에 얼마나 빠르게(혹은 더디게) 감정을 스스로 추스를 수 있는지에 좌우된다는 말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뇌는 주로 감정과 직관, 비언어적인 부분을 담당한다.

타인과의 공감, 조화, 관계에 관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뇌는 좌뇌보다 먼저 발달할 뿐만 아니라

이 시기 내내 지배적인 위치에 있다. 그래서 힐끗 쳐다보거나 냄새를 한 번 맡는 것만으로도

우뇌는 어떠한 상황이든 판단하고 파악한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 장님이 된

글로스터 백작이 주위를 둘러보며 "나는 느낌으로 본다."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반면 좌뇌는 주로 언어, 논리, 추론을 담당한다. 우리는 경험을 언어로 처리하기 위해, 혹은 생각과

아이디어를 우리 자신과 타인에게 분명히 표현하기 위해, 또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좌뇌를 활용한다.

논리와 증거를 증시하는 과학은 자뇌 덕분에 발전해왔고, 분류학, 철학, 언어학 같은 분류 및

정리 부문의 학문들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태어나서 첫 2년 동안에는 좌뇌의 발달이

우뇌에 비해 현저히 더디다. 언어와 논리력을 갖춘 자뇌가 영향력을 발휘하기 전에 먼저 우뇌가

활발히 발달됨으로써 성격의 토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우뇌가 여전히 우위를 갖는

경향에 대한 이유일 수도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간혹 분별 있는 행동을 해야만 하는 이성적인 이유가 분명히 있는 데도, 나도 모르게 엉뚱하게 튀어나와

곤란했던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뇌의 분별 있는 부분(좌뇌)이 언어기능을 담당하고 있는데도,

종종 다른 부분(우뇌)이 그 언어기능을 조종하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내가 방금 무슨 헛소리를 한 거지? 하는 경우). 이것이 바로 우뇌의 우위가 드러난 경우다.

 

- 인생학교 <정신>, 필립파 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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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 혹은 대중심리서를 많이 읽었거나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심리치료사들의 강의를

자주 들은 사람이라면, 인생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남들보다

더 잘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심리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경험한 일에 대해 비슷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10대 청소년 시기를 지날 때, 직업을 갖게 되었을 때,

과도한 업무에 시달릴 때 그리고 점차 나이를 먹어 늙어갈 때 등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표준적인 범주에서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인간의 DNA 차이로 인해 처방약에 대한 반응이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므로

같은 질병이라 해도 환잔에 따라 치료법과 처방약이 다르다고 안내한다.

물론 유전자가 동일한 사람은 없다는 매우 근원적인 전제하에 말이다.

예를들어, 환자의 혈전을 안전하게 예방할 수 있는 혈전치료제의 투여랑은 환자가 약물을 얼마나 빨리

흡수할 수 있는 유전자를 자졌는가에 달려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삶에서 맛보는 좌절이나 기쁨, 사회적 관계나 연인 관계 등에서 겪는 난관이나

즐거운 경험들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이를 어떻게 새로운 역량으로 키우는지는 개인마다 다르다.

사람마다 DNA가 다를 뿐만 아니라 뇌 활동의 패턴도 다르기 때문이다. 환자의 DNA를 해독하게

됨에 따라 미래 의학분야의 전개 방향이 달라진 것처럼, 우리 각자의 개성을 설명할 수 있는 정서적 기질과

정서 상태를 좌우하는 뇌의 특징적인 패턴을 이해함으로써 오늘날 심리학의 전개 방향이 달라지고있다.

 

유사한 배경에서 살아왔으나 동일한 인생 경험과 사건에 처했을 때 매우 극적으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목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스트레스에 직면했을 때 어떤 사람은 잘 극복했지만

어떤 사람은 완전히 무너졌다. 후자의 경우 그들은 매우 불안해하고 우울해하며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반면 전자는 좌절을 잘 극복하고 이겨낼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오리혀 이를

통해 이득을 보기도 했다. 이것이 수수께끼였다.

저자는 이혼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실직, 그 외에도 많은 좌절에 처했을 때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반응을 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고 한다. 반대로, 진정한 쟁취했을 때나 일에서

성공을 거두었을 때처럼 인생에서 좋은 일이 생길 때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나타내는 이유도

궁금했다고 한다. 왜 이처럼 수많은 삶의 굴곡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다양한 정서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연구를 통해 얻은 답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정서 유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서 유형은 그 종류와 강도, 지속 시간 등에 매우 다양한 정서 반응과 대처 대응력 등을

합한 것이다. 독특한 지문과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저마라 독특한 정서 프로파일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던 연인과 헤어지는 일처럼 아픔을 겪게 될 때도 어떤 사람은 굉장히 빠르게 회복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자기비하와 절망으로 나락에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를 파악하고 설명하는 데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정서 유형이다. 같은 부모님 밑에서 자란 형제와 자매라고 하더라도

누구는 실직을 해도 금방 떨치고 이어나는 반면, 누구는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자신이 무능력하다고

생각하면서 좌절하는 이유도 정서 유형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자녀가 학교야구 경기에 잘못된 판정을 받아 퇴장당한 상황에서, 그냥 무시해 버리는 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흥분해서 소리를 질러대는 아버지도 있다. 이 역시 정서 유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주변의 많은 친구들에게 끊임없는 위로의 원천이 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가족과 친구에게 절대적인 지지와 위로가 필요한 상황에서조차 냉랭하게 행동하는데, 이 역시

정서 유형의 차이에서 온다. 또 어떤 사람은 타인의 비언어적 표현과 목소리의 톤 등을 마치

광고판의 문구처럼 명확하게 읽어내는 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를 마치 제2외국어를 대하듯이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러한 차이도 정서 유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람의 반응을 결정하는 정서 유형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 수많은 질문이 쏟아질 수 있다.

청년기 초반에 분명히 드러나는 정서 유형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인가,

정서 유형이라는 것이 일생 동안 변하지 않고 계속 유지되는가 등의 질문들 말이다.

또 정서 유형이 신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서 유형의 차이가 뇌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다음에 따라나와야 할 질문은 정서 유형이 우리의 신경 회로와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정서 유형이 변화될 수 있는 것인지이다.

그리고 정서 유형은 변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가 삶의 희로애락을 다룰 수 있는지와 관련된

질문도 중요하다. 이제 뇌가 우리의 정서 유형을 어느 정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뇌는 변화를

어떻게 측정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남았다.

 

궁금하다면 리처든 J. 데이비드슨이 쓰신 '너무 다른 사람들'을 추천한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 1984년부터 현재까지 위스콘신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로 재직중이시다.  그리고 인간 뇌 활동에 관해 연구하는 와이즈먼 실험실과

신경과학적 정서에 관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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