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4.05.26 가장 행복한 삶속의 고독 (2)
  2. 2013.09.16 영화 '관상'- 권력앞에선 아무 소용없다.
  3. 2012.12.08 가벼움을 쫓는 사람들 (2)
  4. 2012.10.22 연애시대

인간과 시간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독이 나를 유혹했다.

이제 고독은 나의 벗이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고독보다 더 만족스러운 친구가 있을까.

-샤를 드 골-

 

퇴근길 그냥 지나가자 주문을 걸었지만...

나도 모르게 안주 집어들고 맥주를 찾고 있었....


편의점에는 맛난 맥주가 없다. ㅠㅠ

아사히를 집어 들고

음악과 함께 서재서 시간보내기.

 


책 이야기를 꺼낸 건 오랜만인 것 같다.

뭐가 그리도 여유가 없었던건지..

오랜만에 '고독의 위로'를 꺼내들었다.

인간의 거의 모든 불행은 고독할 줄 모르는 데서 온다했다.

 

마음 자세를 바꿔야 할 때 혼자 있는 능력은 귀중한 자산이다.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고 나면 존재의 중요성과 의미에 대한 근본 적인 재평가가 필요하다.

인간관계가 모든 형태의 고민에 해답을 제시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문화에서,

좋은 마음으로 도우려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격려도 고맙긴 하지만,

고독 또한 치료에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다.

 


가장 행복한 삶이란

인간관계나 인간관계 이외의 것 어느 한쪽에 대한 관심을

유일한 구원의 수단으로 이상화하지 않는 삶일 것이다.

전체를 향한 소망과 추구에는 인간 본성의 양면 모두가 포함되어야 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우리 모두 좋은 본성과 너무도 오랫동안 떨어져 시들어가고

일에 지치고 쾌락에 진력이 났을때

고독은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가.

 

 

 

 

휴일은 틀에 박힌 일상에서의 탈출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휴일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곤 한다.

휴일과 변화하는 능력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후퇴를 뜻하는 'Retreat'란 단어에도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적과 맞섰다가 후퇴를 한다면 이는 곧 패배를 뜻하지만,

후퇴는 다른 의미도 담고 있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는 잠, 휴식, 오락을 비롯해 다양한 정신적, 신체적 활동을 뜻한다.

 'Retreat'는 '물러나 있는 시간'이나 물러나 있는 장소, 특히 종교적 명상과 조용한 예배를 하는 장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Retreat'는 1792년에 설립되어 지금도 번성하고 있는 유명한 영국 정신병원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병원의 설립자 새뮤얼 튜크(Samuel Tuke)는 관용, 친절, 최소한의 구속을 병원의 방침으로 내세웠다.

그는 병원이 세상의 '괴로움'으로부터 안전한 '도피처'가 되어주어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의 혼라느러운 마음이 건강하게 변하길 흐망했다.

 

 

사실 현대 사회에서는 고독이라는 평화를 얻기가 힘들다.

전화는 끊임없이 사생활을 위협한다.

도시에서 자동차와 비행기, 전차의 소음을 피하기란 불가능하다.

물론 이런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자동차가 발명되기 전에 도시의 거리는 끊임없이

들리는 소리들로 지금보다 더 시끄러웠을 것이다.

자갈길을 달리는 마차의 쇠바퀴 소리는 아스팔트를 달리는 고무타이어 소리보다 더 요란하다.

사실 어디를 가든 소음이 있기 때문에 이제 사람들은 소음이 없으면 오히려 불편해질 정도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무자크Muzak'(상점, 식당, 공항 등에서 배경 음악처럼 내보내는 녹음된 음악)라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상점, 호텔, 비행기, 심지어는 엘리베이터까지 침범했다.

운전하는 동안을 휴식시간으로 여기는 운전자들이 있는데,

그 시간만큼은 찾는 사람 없이 혼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차에든 장착된 라디오와 카세트 플레이어는 사람들이 잠시도 쉬지 않고

무슨 소리든 들으려 한다는 증거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용 무선전화가 발명되고 이를 설치하는

운전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운전하는 동안이라 해도 누군가가 대화를 청해 온다면

언제든 응하려 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소음 방지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감각 박탈의 반대, 즉

감각과부하라는 문제는 대체로 무시된다.

오늘날 '초월 명상법'같은 기법들이 유행하는 것은 도시 환경에서 얻기 힘든

고독과 침묵의 시간을 가져보려는 노력일 수도 있다.

습관적으로 접하는 환경에서 의도적으로 물러나 보면, 스스로를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혼잡스러운 매일의 삶에서는 인식하지 못하는 내면 깊숙한 곳의 느낌과 접촉하게 된다.

통상적으로 우리의 자의식은 물질세계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 작용에 좌우된다.

책으로 들어찬 서재는 내 관심사를 반영하고, 작가로서 나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하며,

내가 스스로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자각하게 한다.

 

 

내 가족, 동료, 친구들, 그리 가깝지 않은 지인들 등과의 관계는 내가 어떤 시각을 지닌 사람이며

예측컨대 어떠어떠한 방식으로 행동할 사람인지를 규정한다.

습관적으로 누군가를 규정하는 요소들에는 한계가 있다.

내가 평소의 나 자신에 불만스러워한다고 가정해보자.

혹은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경험이나 자기 이해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런 것들을 탐험하는 한 가지 방법은 현재의 환경에서 벗어난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데는 필연적으로 위험이 따른다.

마음속에서 새롭게 뭔가가 조직되고 통합되려면 먼저 어느 정도의 해체가 일어나야 한다.

이전의 형태를 붕괴시키고 나서 더 좋은 것이 올지는 경험해보기 전까지 아무도 모른다.

 

 

 

 

 

오랜만의 책 이야기 참 좋다.

요녀석이 아지트가 서재였것만

내가 음악들으며 떡 버티고 있으니 오지도 못하고

다른공간 책상위에 올라가서 자포자기 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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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행복한 삶속의 고독  (2) 2014.05.26
Posted by 제리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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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적샷굿샷 2014.05.27 09: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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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인간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고는 인간을 현명하게 만든다.

지혜는 인생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든다.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에 근거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패트릭 번-

 

 

 

관상으로 모든것을 꿰뚫어본다는 당신은 무릎팍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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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홍(김혜수)는 말한다.

"사주위에 관상이고 관상위에 눈치"라고.

정해진 운명, 타고난 재주가 권력앞에선 무슨소용이란 말인가.


내경(송강호)는 관상으로 조선의 운명을 뒤집으려 했다기보단 옳고 그름을 바로잡으려는 정의였으리라.


정답은 알려주진 않는다.

다만 내경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를 봤을 뿐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보지 못했다"라고 말해줄 뿐.

 

 

 

주연(이종석)의 존재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들은 많지만 내가볼땐 딱 거기까지의 존재로는 적당하다 본다.

연홍(김혜수)의 존재감도 높지 않아 아쉽지만 섹시, 화려함에 눈은 즐거웠다.

 

 

Posted by 제리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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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 맡는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는 영원 회귀의 사상 무거운 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테를 드러낸다.

그러나 묵직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가장 무거운 짐이 우리를 짓누르고 허리를 휘게 만들어 땅바닥에 깔아 눕힌다.

그런데 유사 이래 모든 연애 시에서 여자는 남자 육체를 하중을 갈망했다.

따라서 무거운 짐은 동시에 가장 격렬한 생명의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이것이 기원전 6세기 파르메니데스가 제기했던 문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세상은 빛-어둠, 두꺼운 것-얇은 것, 뜨거운 것-찬 것, 존재-비존재와 같은

반대되는 것의 쌍으로 양분되고 있다.

그는 이 모순의 한쪽 극단은 긍정적이고 다른 쪽 극단은 부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이론은 모든 것을 긍정적인 것(선명한 것, 뜨거운 것, 가는 것, 존재하는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나누는 극단적 이분법이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로 안이하게 보일 수도 있다.

단 이 경우는 예외다. 무엇이 긍정적인가? 묵직한 것인가 혹은 가벼운 것인가?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답했다.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미묘한 차이는 존재하지만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도 있고 구별해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

권태안에서도 극복할 수 있고 행복을 찾아낼 수 있것만

순간의 즐거움과 자극만을 행복이라 착각하며 즐거움이라 쫓는 사람들..

순간의 즐거움은 있을지언정 그래서 자기만의 것이 없는 사람들은 늘 삶이 허무하다.

가끔씩은 EVEREST COFFEE와 함께 밀란 쿤데라를 만나 볼 필요가 있다.

 

 

 

 

Posted by 제리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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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amuse 2012.12.08 19: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서점에서 저책을 보았어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예전부터 유명한 책이었지만
    저렇게 근사한 표지로 다시 발매되니 정말 사고싶드라구용 ㅎㅎ

나이먹었다고 비타민을 열심히 챙겨먹었더니

안걸리던 몸살 감기가 지독히 걸렸다.

물만 닿아도 "아파" 소리가 절로나니... 이건 뭐....

 

드라마 '연애시대'를 다시보기 결제했다.

다시봐도 이쁘고 풋풋하고...

주옥같은 나래이션에

선선한 바람부는 이 가을에 감성자극 충만한 '연애시대'

 

 

 

어디서부터가 사랑일까.
걱정되고 보고싶은 마음부터가 사랑일까.
잠을 설칠 정도로 생각이 난다면 그건 사랑일까.
어디서부터가 사랑일까.
오랜 시간이 지나 뒤돌아봐도 그래도 가슴이 아프다면 그게 사랑이었을까.
그건 사랑이었을까.

 

지구상에 65억 인구가 있고 신이 아무리 전지전능하다지만
그 많은 사람의 앞날을 미리 알고 정해 놓을리가 없다.
그런 불필요한 수고를 할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그것은 운명이었다고 믿고 싶어질때가 있다.
지난 날을 돌아보며 그것은 운명이지 않았을까 변명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다른 길을 선택할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잊어버린 채,
그 순간의 그 인연의 깊이와 무게가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워지고 감당할 수 없을때,
누군가 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을때,
내가 그 누군가의 인생을 완전히 틀어 놓았다고 밖에 할 수 없을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선명해지고 중요해지는 순간을 돌아보며
차라리 그런 만남은 운명이었다고 눈 돌리고 싶어진다.

 

기억이란 늘 제멋대로다.
지난날의 보잘것 없는 일상까지도 기억이란 필터를 거치고 나면 흐뭇해진다.
기억이란 늘 제멋대로여서 지금의 나를, 미래의 내가 제대로 알리 없다.
먼 훗날 나는 이때의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가끔은 시간이 흐른다는 게 위안이 된다.
누군가의 상처가 쉬이 아물기를 바라면서.
또 가끔 우리는 행복이라는 희귀한 순간을 보내며,
멈추지 않는 시간을 아쉬워 하기도 한다.

 

산다는 건 어차피 외로움을 견디는 것.
누군가가 그랬지..
지구에 4억 인구가 있다면 4억개의 고독이 있다고...
우리는 어설프게 이기적이고 결국 상처를 입혔다.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어떤 시간은 사람을 바꿔 놓는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랑은 시간과 함께 끝나고, 어떤 사랑은 시간이 지나도 드러나지 않는다.
언젠가 변해버릴 사랑이라해도 우리는 또 사랑을 한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것처럼..
시간이라는 덧없음을 견디게 하는 것은 지난날의 기억들.
지금 이 시간도 지나고 나면 기억이 된다.
산다는 것은 기억을 만들어 가는 것.

 

우리는 늘 행복한 기억을 원하지만, 시간은 그 바램을 무시하기도 한다.
일상은 고요한 물과도 같이 지루하지만 작은 파문이라도 일라치면
우리는 일상을 그리워하며 그 변화에 허덕인다.
행운과 불행은 늘 시간 속에 매복하고 있다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달려든다.
우리의 삶은 너무도 약하여서 어느날 문득 장난감처럼 망가지기도 한다.
언젠가는 변하고 언젠가는 끝날지라도
그리하여 돌아보면 허무하다고 생각할지라도
우리는 이 시간을 진심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슬퍼하고, 기뻐하고, 애달아하면서.
무엇보다도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고통으로 채워진 시간도 지나고,
죄책감 없이는 돌아 볼 수 없는 시간도 지나고
희귀한 행복의 시간도 지나고, 기억되지 않는 수많은 시간을 지나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우리는 가끔 싸우기도 하고
가끔은 격렬한 미움을 느끼기도 하고
또 가끔은 지루해하기도 하고
자주 상대를 불쌍히 여기며 살아간다.

 

시간이 또 지나 돌아보면 이때의 나는 나른한 졸음에 겨운 듯
염치없이 행복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가 내 시간의 끝이 아니기에 지금의 우리를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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