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각나라의 선수들의 입장을 보며

모두가 아는 강국도 있을테고 저런 나라도 있었구나 싶은 많은 선수들이 모인 자리.

왠지모르게 짠하게 느껴진다.

나라를 대표하는 부담과 얼마나 떨리고 긴장될지

타지에와 응원관람객 없이 대회에 참여하는 나라도 있을테고

오늘 이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훈련으로 준비했는지,

열심히 임했지만 메달을 따지 못한 아쉬움은 응원하는 우리보다 본인이 더 안타깝고 좌절하기도 할 것 같고

우리의 마음과 같다고는 할 수 없다.

 

우리나라가 메달을 따지 못한 아쉬움인지

아니면 저 선수가 메달을 따지 못한 안타까움인건지..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는 이전에 어떤 실력을 뽐냈는지 언제그랬냐는 듯 곧 잊혀질테고

예상대로 언론에서는 남자 쇼트트랙이 금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했다는 왜 문제가란 보도가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하고..

정말 쇼트트랙을 하고 싶어서 귀화한 선수의 이야기도

그 오래 이전에는 정말 쇼트트랙을 하고 싶어하는 다른 선수들의 기회를 박탈하게 만든 적이 있었던 건 알고 있는걸까.

만약 그 선수가 금메달을 따지 않았다면 우린 또 어떻게 말할까.


연아의 금메달은 아쉽지만 세계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는 선수라는 건 틀림없다.

하지만 서운하기도 하고 인정하기도 싫지만 유명 외신들의 평가도 무시할 순 없다.

예전에 더 이상의 발전의 모습이 아닌 이제는 연아의 한계인걸까?라고 말한게 괜히 미안해 지기도 하고.

 

(엉뚱하게 든 생각은 연아가 TV조선에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배신자라는 등

응원을 안할 것 처럼 손가락질 한 그 많은 사람들이 생각나고..)

이럴땐 내편이고 저럴땐 너네편이고

나라를 위한 것 마냥 정말 정의가 뭔지 착각하는 사람들.


편파판정 누구나 다 아는 것이고 그 나라에게는 그릇이 거기까지라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느낀다.

너무 편파 판정만 가지고 열을 내는 건 더 좋은 발전을 위한 자세는 아닌 것 같다.

훌륭한 자격을 갖춘 우리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외신들의 부족했던 평가를 받아들여 더 훌륭한 선수가 되는 수 밖에.



러시아 선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는 첫 금메달이기도 하고 이제 시작이고 기회일 수 있다.

처음부터 완벽한 선수는 없다.

연아에게 없는 것이 이 선수에게는 있을 수 있는게 당연한 것이고.

본인도 느끼는 바가 있다면 편파판정에 대한 부끄러움을 이겨내려 앞으로 더 열심히해 다른 모습을 보여줄테고

다음 대회때 어떤 선수였는지 알게되겠지.


그리고

열심히 뛰고 온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 들게 하지 말자.

앞으로 더 잘할 거란 응원을 해주는 게 우리가 도와주는 게 아닐까.


다른 나라 선수들을 비웃지는 말자.

우리나라 선수뿐 아닌 세계나라 선수들에게 고생많았다라고

나는 그렇게 응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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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류의 슬픔은 물기 없이 단단해서,
어떤 칼로도 연마되지 않는 원석(原石)과 같다.

- 한강 < 몇 개의 이야기 12 > -

 

 

 

 

지난주에 본 영화.

역시나 상영관이 많지 않아 즐겨찾는 영화관에서 보진 못했다.
나의 영화 취향이 이상한건지..
어쩜 이렇게 보고 싶은 영화마다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아다녀야 하는건지... ㅡ,.ㅡ

꼭 앉아서 보는 자리가 있었것만 며칠전부터 예매를 해도
이미 나의 자리 바로 옆에 누군가 예약을 해놓았길래
그열 가운데 자리로 예매해놨것만
결국 그자리에는 사람이 오질 않고
자리도 널널한데 바로 내 옆자리에 와서 앉는 사람은 뭔지.

열에 두사람뿐 남들이 보면 행여 연인인가 의심받기도 충분한.
아니 보통 떨어져 앉지 않나?
영화시작하면 자리를 옮겨야겠다 했는데 왜 또 커플이 내 옆자리 하나 비우고 앉는건지..
결국 옮기지도 못하고 널널한 영화관에서 불편하게 앉아 영화관람했다.
우울한 영화였것만 더 우울하게 보았던 '인사이드 르윈'

 

 

 

 

 

 

어제일도 오늘 같고 내일의 태양이 다시 뜬다한들 달라지지 않는...
일주일의 시간이 하루의 이야기와도 같다.

뮤지션으로서 성공이다 실패다가 아닌
때론 희망을 꿈꾸지만 '어쩜 슬픈예감은 틀리지 않아?"란 다시 하루를 힘겹게 견뎌내야 하는 일상.
잿빛거리에서 정착이란 없는 떠돌아다니는 고양이의 삶과도 비슷한...

흘러나오는 음악들을 들으면 르윈의 삶과도 같다..
물론 추억의 포크송을 듣고 있자니 향수도 떠올릴 수 있지만

이 영화는 단지 음악이 좋다라는 메시지라기 보단
한 사람의 내면의 모습과 삶을 엿본다는 느낌이랄까...

강한 메시지를 받진 못해서 솔직히 나에겐 와닿는 영화는 아니였다.
어쩜 이럴수 있을까란... 머리가 좀 아팠다.

 

 

 

 

 

 

 

Posted by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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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은 차가운 물을 부으면 잘 녹지 않습니다.

뜨거운 물을 부어야 잘 녹습니다.

뜨거운 물은 사랑이고 배려이고 베풂이고

나눔이고 어울림이고 동행이고 감사이고 기쁨입니다.

뜨거운 물이 될 수 있어야 진정한 벗을 얻습니다.

-인생 사용설명서-

 

 

 

 

 

 

 

역시 디즈니 다웠다.

잠시 어른이라는 것을 잊게 해주는 것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힘이 아닐까싶다.

디즈니는 항상 ‘진정한 사랑'이라면 힘을 갖게 된다는 메시지를 담아 전해준다.

남녀의 사랑 뿐 아니라 가족의 사랑까지도 모두 깨닫게 해주는..

비록 애니메이션일지라도 어른이 눈물을 훔쳐도 절대 챙피하지 않은..

그래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언제나 기대이상이다. 

108분의 시간이 10분인 것 같은..

감성, 감동 충만하게 충전하고 돌아왔다.

너무도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2013년은 '어바웃 타임'으로 따숩게 마무리했다면

2014년은 '겨울 왕국'으로 따숩게 한해를 시작한다.

 

 

 

 

 

 

 

 

 

 

 

 

 

 

사랑은 열린문이다.

다잊어 다 잊어

 

하늘 바람과 살거야

다잊어 다잊어

이제 다시 울지 않을래

살아갈래

폭풍몰아쳐도

이제 겁나지 않아

문을 열고 나갈거야


진정한 사랑만이 얼어붙은 심장을 녹일거야.

 

 

 

 

 

 

 

 

'Let It Go' 겨울왕국 OST -효린



오늘밤 내린 하얀 눈은 온 세상을 뒤덮고

외로움 한 가운데 나 홀로 남겨졌네

내 안의 부는 바람 거친 폭풍 되고

정말 힘든 맘 하늘은 알겠지

맘 열지 마 보여주지 마 너를 감춰 숨겨둬야 해

그 아무도 내 모습을 알지 못하게




let it go let it go 더 이상 참지 않아

let it go let it go 나는 이제 떠날래

난 이곳에 여기 이곳에

let it go let it go 외로움 따윈 상관없어




거릴 두고 보면 모든게 작아보여

나를 두렵게 했던것 이제 겁나지 않아

차가운 공기들 속에 의지는 강해져

내가 뒀던 세상 향해 이제 소리칠거야



let it go let it go 더 이상 참지 않아

let it go let it go 나는 이제 떠날래

난 이곳에 여기 이곳에

let it go let it go 외로움 따윈 상관없어


그동안 내 삶은 어둠에 갇혔었지

이제는 달라, 어제의 내가 아냐

나를 찾지 마



let it go let it go 더 이상 참지 않아

let it go let it go 나는 이제 떠날래

난 이곳에 여기 이곳에

let it go let it go 누구도 날 막지 못해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 겨울왕국 OST - Frozen

 

 

 

 

 

 

 

 

 

Posted by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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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하라 료타로의 '하루' 개봉을 기다렸는데 역시나 또 개봉관이 없었습니다.. ㅜㅜ
쿡에 동시개봉상역작으로 포함되어있어서 극장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봤죠. ㅡ,.ㅡ
2030년 근 미래 교토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소녀 ‘쿠루미’는
사랑했던 남자친구 ‘하루’를 불의의 사고로 잃고,
다락방에 틀어박힌 채 살아가고 있던 어느날
‘하루’와 똑같이 닮은 안드로이드 로봇 ‘큐이치’가 ‘쿠루미’를 찾아오고,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았던 ‘쿠루미’도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반전을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쿠루미씨의 슬픔을 100%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건 무리지"
"제가 로봇이라서요?"
"사람이라도 똑같아. 다른 사람의 슬픔이나 괴로움은 알 수 없을 거야"
"그냥 지켜만 봐줘, 사람은 그것만으로 충분해"




 

 


개봉전부터 기다렸던지라 개봉하자마자 바로 달렸갔었습니다.
이쁜남자 장근석과 함께말이죠. ㅡ,.ㅡ

시험 공부를 핑계로
어바웃 타임을 보질 않았더라면 엄청 후회할 뻔했죠.
시간을 되돌리다 인연을 놓치게 됩니다.
결국 몇번의 시간을 되돌리며 인연을 맺고.....
자기 문제의 해결은 스스로 해야한다는 것을 이 영화에서는 알려줍니다.

결국 주인공은 더이상의 시간 여행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되돌리려 바꾸려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그날의 일상 모두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죠.



 

 

 




매일 매일 하루를 즐기라고 말해줍니다.
지금의 평범한 삶이 마지막 삶인 것처럼...
그리고 똑같은 삶을 두번 느껴보라 알려줍니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테니까요.
짜증과 피곤함으로 삶을 낭비하지 말아야하니까요.
그리고 삶이라는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라고 교훈을 줍니다.

올해 미처 녹지 못한 나의 굳은 심장을 녹인 기분입니다.
인생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죠.



명장면을 뽑은 기사가 있네요. 정말 그런가요?



Posted by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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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내한하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예매를 했더랬습니다.
공장 워크샵이 겹쳐 손해보고 다른 날짜로 겨우 바꾸기까지...
꼭 보겠다는.. ㅡ,.ㅡ


 

 

 

역시 공연은 아주머니들의 잔치였습니다.
2층 VIP자석과 R석은 여기저기 아주머니들 단체로...
그건 뭐 상관없는데 공연장에서의 매너란 역시 실망이었습니다. ㅡ,.ㅡ

뒷자리는 계모임 아주머니들인지 곗돈 걷으시고..
그리곤 서로 자식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으시다 다른 집 자녀 이야기가 나오시고.
"걔 서울대 들어갔잖아"
"응 공부를 잘했나보네"
"그런데 걔 산만하자나. 사회성도 떨어지고"
"그래?"
"걔 엄마도 똑같아. 산만하고 이상해"...

어째 이야기의 흐름이.. 이상한 애로..
부러우면 지는건데 고로 아주머니들 지셨죠.

공연 중간 중간 여기 저기 아주머니들 백에서 전화벨이 울리고..
왜 집에 안들어 오는지 독촉전화인듯 싶고요잉.
꿋꿋하게 자리에서들 전화 받으시더라고요.
그것도 부족하셨는지 공연 중간에 서로 자리들 바꾸시고
ㅡ,.ㅡ

음식 먹지 말라고 계속 직원들에게 지적 당하시고 아주머니들끼리는 괜찮다며
공연 시작하고 먹으라면서 서로 위로하시고

그러니깐 얼마나 크게 떠들면 저런 세세한 이야기가 다 들렸겠습니까. ㅜㅜ
순간 같이 이야기 하는 줄 알고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앞 뒤 옆열 모두 친해진 느낌이었죠.

VIP는 자리가 없어 예약 못했지만 R석이라도 끊은것은 이 이유도 포함입니다.
매너.. ㅠㅠ

세종문화회관이 아닌게 아쉽고 2층 가운데열은 정말 아주머니들 방해때문에 기분이.. ㅠㅠ

솔직히 공연보다는 여기저기 아주머니들이 더 인상깊었네요.

 

 

 


 

일단 맘마미아는 직접 본 감동이 있습니다.
워낙에 유명하니 굳이 설명이 필요없죠.

저는 마지막 엔딩이 더 감동이었습니다.
끝나고 두 곡의 공연^^

개인차가 있겠습니다만 영화를 먼저 본 저로서는 뮤지컬보단 영화가 더 감동이었네요.
블루스퀘어는 처음 가보았습니다만 저는 무척 실망이었습니다.

어쩐지 잘 찾아 갔다 싶었는데 역시나 끝나고 나서는 지하철 거꾸로 탔네요.... ㅡ,.ㅡ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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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어요. 바람이 당신을 데려온 그 순간을"

 하늘을 동경한 소년, 지로

 열차 안에서 바람에 날아가는 모자를 잡아준 한 소녀를 만난다.

 그러나 지진으로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서로 이름도 모른 채 헤어지게 된다.

 "당신을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어요"

 소년의 꿈까지도 사랑한 소녀, 나호코

 10년 뒤, 지로와 나호코는 바람과 함께 운명적으로 다시 만난다.

 

 

 


예고편처럼 러브스토리의 비중은 크지 않다. ㅡ,.ㅡ

 

나의 게으름과 기록을 남기기위해 이제서야 올리는 것이지만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는 개봉하자 마자 봤었다.

그리고 무슨 이유때문인지는 몰라도 개봉날짜가 2~3개월 늦어지기도 했었다.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바람이 분다'를 마지막으로 정말 날개를 접는것일까.

그와의 이별이 너무도 아쉽고 슬프기만 한다.

 

 

 

뭐 굳이 다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바람이 분다에 나오는 '호리코시 지로'는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주력 전투기였던 '제로센'을 설계한 실존 인물이다.

군국주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전투기 제로센을 만들었던 호리코시 지로를

전쟁에 기여한 영웅으로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미야자키 감독에 대한 역사 인식에 대한 실망의 목소리도 크다.

하지만 나는 "단지 그시대를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죄를 안고 살아가는 건 잔인한 일이다"라고 말한

그의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지로는 하늘에 비행기를 띄우는 것만이 꿈이었기에 열심히 달려갔지만

자기도 모르게 전쟁에 기여하게 된 것 뿐이었다.

우리가 과연 그런 지로에 대해 옳다 그르다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란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엔 너무 깊게 비판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암울한 시대에 태어나 꿈을 쫓는 청춘의 모습, 그리고 바람이 부는 언덕에서 운명처럼 다시 만난

소녀 나호코와의 안타까운 짧은 러브스토리다.

그리고 역시 기술강국의 일본이다란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보다보면 '바람이 분다, 살아가야 한다'라는 대사가 자주 등장한다.

고로 영화의 메시지는 바람이 불어도 살아가야만 하는 청춘의 모습을 보여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걸로.

 

 

 

Posted by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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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인간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고는 인간을 현명하게 만든다.

지혜는 인생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든다.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에 근거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패트릭 번-

 

 

 

관상으로 모든것을 꿰뚫어본다는 당신은 무릎팍도사?

 

 

 

 

연홍(김혜수)는 말한다.

"사주위에 관상이고 관상위에 눈치"라고.

정해진 운명, 타고난 재주가 권력앞에선 무슨소용이란 말인가.


내경(송강호)는 관상으로 조선의 운명을 뒤집으려 했다기보단 옳고 그름을 바로잡으려는 정의였으리라.


정답은 알려주진 않는다.

다만 내경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를 봤을 뿐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보지 못했다"라고 말해줄 뿐.

 

 

 

주연(이종석)의 존재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들은 많지만 내가볼땐 딱 거기까지의 존재로는 적당하다 본다.

연홍(김혜수)의 존재감도 높지 않아 아쉽지만 섹시, 화려함에 눈은 즐거웠다.

 

 

Posted by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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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고 말해줘서 다행이다.

그게 해줄 말이 없거나 빨리 끝내게 하기 위해 내뱉는

'괜찮아'가 아니어서 감사하다.

상처받지 않은 척 하려고 모른 척 하지만

사람들은 사실 '괜찮아'의 그 다양한 의미를

모두 구별해 낼 줄 안다.

-김혜남- 

 

 

 

절대로 다른사람들이 당신에게 틀렸다고 말하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몬스터대학교 시작전 5분간 보여주는 픽사의 단편애니 'The Blue Umbrella'

도시의 마법은 시작되고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빠져들게 된다.

 

 

 

 

몬스터 대학교는 아이들만의 애니는 아니잖아? ㅡ,.ㅡ

물론 나의 시각과 동심은 그때와는 또 달라졌지만 그래도 좋다.

아직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해야할까.

 

 

Posted by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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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언론플레이가 심한건 한국영화 뿐이군요.

롯데시네마 역시 수입 영화 상영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없다보니 최근  씨네큐브를 자주 가게 되네요. ㅡ,.ㅡ

지난번 '사이드 이팩트'에 이어 '마스터'와 '마지막 4중주'를 보았습니다.

 

 


저는 '마스터'를 보고 내용 이해가 좀 어려웠습니다. ㅜㅜ

여운이 남는다거나 메시지를 받는 다긴 보다는 그냥 영화를 본다?란 느낌이네요.

유명 평론가 000기자가 평한 것도 보았지만 별루네요.

 

 

 

 

 

표정 구부정한 어깨 왜 그런모습인지에 대한 묘사,기술적인 재료 평가를 원한게 아니였기에...

결론을 내린걸 보니 굉장히 슬픈 사랑이야기, 동성애, 전쟁 등의 상처로 허물어진 남자에 관한

내용이라고 해서 뭐 좀 싱겁기도 하고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렇네요.

평론만 봐도 빤한 이야기에 나오는... 그래서 그냥 보았다?가 저한테는 맞는것 같아요.

영화가 재미없다 실망이다는 아니에요... 저한테는 영화 메시지가 뭐였는지 결론내기가 어려워요.

 

 

 

 

 

마지막 4중주도 아무런 정보 없이 가서 본 영화였습니다.

영화보는 내내 그들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걸까? 했었죠.

영화상영과 동시 음악이 벌써 발매가 되었다고만 들어서 말이죠.

마침 임신한 후배도 있고해서 태교겸 데리고 갔더랬습니다.

 

 

 

 

저는 스탭들 이름이 다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영화를 본다라기 보단 그들과 함께 했다는 것이 더 맞겠네요.

그들과 움직이고 그들의 연주를 보았습니다.

또한번 보고 싶은 영화네요.

대사 하나하나가 철학이고 삶이었습니다.

영화 '마스터'보단 훨 감동.

배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을 마스터에서 보고 여기서 연달아 또 보니 몰입도가 헷갈... ㅡ,.ㅡ

후배는 졸았다고 하는데...

제가 적극 추천해서 본 지인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셨다 하는군요^^

이 영화를 놓쳤다면 후회할 뻔했습니다.

 

Posted by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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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들은 국내 영화만 상영하기 바쁘고

수입 영화는 시간대를 참 이상하게 잡아놓네요.

오늘이 아니면 영화를 놓칠까 싶어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사이드 이펙트'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우울증 처방된 약의 부작용에 대한 스토리로 시작합니다.

여기저기 리뷰를 보니 처음에는 지루할 지 모른다 써있었지만

저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몰입해서 재미있게 본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약에 대한 부작용이 아닌 인간의 욕망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이야기하고 있죠.

그 욕망이 남편을 아무렇지 않게 살인까지 이어지고

억울하게 벼랑끝에 내몰린 정신과 의사가 빠른 전개로 진실을 쫓아 가는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글쎄요...

롯데시네마에서 이 영화 상영시간을 오전대와, 점심시간 아니면 자정이 거의 가까운 시간대에 잡은 것을 보면

대중들에게 그리 임팩트를 줄 수 없다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너무 흥행에 목숨 건 영화보단 오랜동안 여운과 메시지를 주는 영화가 저에게는 더 매력이라

다른 분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습니다.

 

 

 

 

 

Posted by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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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사람은 많지만, 사람다운 사람은 생각보다 흔치 않다.
나와 인연이 닿을 정말 사람다운 사람,
이 땅에 희망이 되어 줄 그 단 한 사람!
나는 오늘도 그 한 사람을 찾고 있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 반드시 있음을 믿으면서....

우리는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인연의 끈을 더욱 단단하게 붙잡아 매어야 한다.
타인의 상처와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보듬고, 쓸어주며, 더불어 살아가자.
이 땅에서 회복되지 않을 인생은 없고,
소중하지 않은 인생은 단 한 명도 없다.

 

진짜 사람, 사람다운 사람,
참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디에 있든 주위를 밝고 맑게 하며
온유한 성정의 향기 나는 사람 말이다.
하지만 사람다운 사람을 찾아보기
정말 어려운 세상이다.
'사람' 보다는 학력 지상주의,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한탕주의, 결과중심주의....
이런 '주의'가 판치는 세상이다.
속보다는 겉을 보게 하고 진심은 가린 채
가면 쓰기에 급급한 이 '주의'에 주의하지 않으면
가짜 인생을 살기 쉽다.
이제 세상은 가득 메운 편견들에서 벗어나자.
알을 깨고 나오듯, 편견을 깨라.
그리고 가짜 판 속에서 진짜 당신을,
당신의 인생을 찾아라.
내면의 속사람,
그것이 진짜 당신 자신이다.
당신은 진짜 알짜배기 속사람인가,
겉모습만 그럴듯한
속 시끄러운 겉사람인가?

-사람 속 '사람' 찾기 <백현주>-

 

 

인간은 '현재의 나'와 '되고 싶은 나' 사이에서 늘 고민한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되고 싶은 나'는 늘 따로있다.
되고 싶은 나를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다 보면 죄로 이어지기 쉬운데도,
허탄한 자랑에 목매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자기를 위하여 부를 쌓거나 오직 물질 때문에 살맛 느낀다면
이것보다 더 쓸쓸하고 위험한 인생이 또 있을까?

한낱 껍데기에 불과한 출세와 성공에 목숨 걸기 때문에 경쟁의식은
날마다 더해가고, 우리는 공감해야 할 '진짜배기' 사람들의
순수한 꿈과 열정 그리고 도전 정신은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얼굴은 어둡다.
희망을 잃어가고, 행복한 얼굴을 찾기란 쉽지 않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조금만 시야를 더 넓게 보면 인생에서
넘지 못할 산은 없을텐데.. 존경하고 따를 만한 멘토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도
이 시대가 좌절하는 이유 중 하나라는 말에 공감한다.

"생김새가 예쁜 사람은 뭘해도 예뻐 보인다"라고는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웃는 모습, 먹는 모습은 물론 화내는 모습이나 심지어 우는 모습까지도.
예쁜 사람이 매력까지 지녔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다면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하겠는가.
그래도 세상은 외모가 완벽하게 아름다운 사람이 숨 막히는 매력까지
갖춘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는다.
나는 연륜과 경험, 지식, 마음의 성숙도를 가진 사람이 매력있다.
이런 사람이라면 인생을 걸수 있을 만큼...
파스칼이 말했다.
너그럽고 상냥한 태도와 사랑을 지닌 마음,
사람의 외모를 아름답게 하는 이 힘은 말할 수 없이 크다라고...
사회와 문화 곳곳에서 경계선은 사라지고 도덕은 오간 데 없는
안타까운 모습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얼굴에서 부족함 혹은 상처나 고민이 되는 부분을 수술을 통해서라도
해별해보겠다는 심정, 자기만족을 얻기 위한 마음이라는 것 백번 동의한다.
그 문제에서 벗어나 자존감을 회복하고 삶을 당당하게 긍정적으로 살아간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인간의 매력은 얼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매력은 언행이나 철학고 사고, 성품, 패션 감각 등 어디에서든 뿜어낼 수 있다.
잘나고 못나고의 얼굴 생김이 전부가 아니라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특정 이미지나 풍경나는 향기, 그게 바로 당신 자신이고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포인트임을 기억해야 한다.
성형을 통해 외모가 어떻게 변했든 이 땅에 태어날 때 부모님이 물려주신
고유한 자신, 본질은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른 정체성을 갖고 이야기하면 할 수록 상대를 매료시키는 사람,
헤어지고 나도 향기와 여운이 남는 사람...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게 바로 진짜 미녀 미남이 아닐까?

 

나도 누군가에게는 바르고 어진사람, 누군가에게는 소망이고 희망이 되어주는 사람,

세상을 살맛이 나게 하는 사람,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고 유쾌한 사람,

지나간 자리에 웃음과 밝은 햇살만이 드리워지는 긍정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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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滿月)   -황진이-

희뿌연 실타래 속 조각달은

지구에서 고개 든 누구에게나 애처롭다

천상의 금실로

한 땀 한 땀 검은 밤들을 수놓아

마침내 차란거리며 빛나는 만월(滿月)


 

곳곳에 가루 되어 뿌려져 내림이

지상에서 유일한 樂이요,

진정한 완성이라던 수줍은 속삭임

텅 빈 두 손 설레임으로 채우는 달,

충만을 내려놓고 보람으로 저무는 달



너는 그런 달을 닮았고

나는 그런 너를 담는다

 

 

-따뜻한 만남 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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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仙人은 정제된 외로움과 그리움, 서러움을 아는 사람이다.

아무렴 굳어진 가슴으로 무슨 사랑을 할 터이냐.

 

우주 안에서 외로움을 아는 자가

비로소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요,

그리움을 수시로 느끼는 자가 바로

본향을 찾아갈 수 있는 힘이 있으며,

서러움을 아는 자야말로

진정 타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가 되리.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잔잔히 바라보고 즐길 수 있겠니.

외로움을 즐기라고 하였거늘,

기회가 올 때마다 외면을 하는구나.

 


그 안에 침잠해서 고요히 푹 빠져 본다면

네가 온 곳을 향한 강한 이끌림으로

저도 모르게 호흡이 깊어지리니

아이야, 외로움이 찾아오면

반갑게 앉아 보아라.

 


그곳에서 트이고 가게 되는 곳이 있으리니

그저 한없이 노를 저어라.

가고 가다 보면

네가 닿는 그곳에 황금빛 꽃 피어나

그간의 외로움을 어루만저 주리라.

너의 온갖 서러움이 꽃으로 화하리라.

그리움이 정녕 그곳에 닿아

하늘을 돌아 하늘로 가는 길로 안내하리라.

 


개인의 상념을 버리고

우주의 외로움으로 들어 보아라.

우주는 그 외로움으로

버티고 존재하느니라.

 


저기 어린 눈망울들이 하나같이 반짝거리며

외로움, 서러움, 그리움으로

아롱거리는 것이 보이지 않니.

하늘하늘 날아서 꽃을 피워 주어라.

너의 있는 자리가 그런 꽃밭이 되게 하여라.

 


그런 존재가 되어라.

그리하여 그 모든 외로움과 그리움과 서러움은

가장 아름다운 선물로 보답 받으리.

실로 황금빛으로 찬란할

하늘의 성일러니

그것을 보리라.

그곳에 닿으리라.

 


기쁨의 춤을 나와 함께 추리라.

 

-황진이 <너는 사랑이라 말하지만 나는 그리움이라 말한다>-

 

 

정말 딱 일주일만 황진이를 만나보고 싶다.

급 궁금해진다.

황진이의 시재들을 읽어보면 진정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 보는 여인이었을 터.

그녀의 깊이와 애환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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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런 사실을 잘 몰랐습니다.

그저 알에서 부화해서 눈부신 세상의 공기를 맛보는 기쁨으로만 가득 차 있었습니다.

엄마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부지런히 받아먹는 재미에 빠져 내가 날개가 한 짝뿐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차차 시간이 지나고 날기를 배워야 할 때쯤 되어서야 나는 내가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날기 위하여 온몸에 피멍이 들 정도로 수없이 둥지 밖으로 뛰어내렸습니다.

날지 못하는 새는 새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 정도 고통쯤은 어디까지나 날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둥지 밖으로 뛰어내렸습니다.

그러자 나는 곧 날개가 한 짝뿐이기 때문에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

"엄마, 왜 내 날개가 하나뿐이지? 왜 하나뿐이야?"

"너만 그런 게 아니다. 놀라지 말아라. 봐라, 이 엄마도 날개가 하나뿐이다."

"엄마, 날개가 하나뿐인데 어떻게 날 수가 있어요? 나는 지금 날개가 하나뿐이기 때문에 날 수가 없잖아요?"

"그건 엄마가 어른이기 때문이다. 너도 어른이 되면 날개가 하나라도 얼아든지 날 수 있다.

그러니까 날기 위해서는 먼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엄마, 기다림이 뭐에요?"


"그건, 우리를 날 수 있게 하는 귀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날기보다 먼저 기다림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기다림 끝에 날 수 있다."

나는 엄마의 말씀에 적이 안심이 되었습니다. 어른이 될 때까지 참고 기다리기는 싫었지만

그날부터 어른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무엇을 기다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둥지 안에서 늘 어른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느날 아침 햇살이 나를 보고 "너도 다 컸구나" 하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어른이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당장 둥지 밖으로 나와 날기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오리처럼

뒤뚱거리다가 날개가 없는 오른쪽으로 픽 쓰러지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강한 바람이 불기를 기다렸다가

재차 시도해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엄마, 어른이 되어도 날 수가 없잖아요?"

"사랑을 한번 해보렴. 사랑을 해야 날 수가 있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바위에 머리를 부딪친 것같이 정신이 멍했습니다. 그 말은 내가 생전 처음 들어본 말이었습니다.

"엄마, 사랑을, 어떻게 하죠?"

"네가 직접 한번 경험해보렴."


사랑을 하지 않으면 날 수 없나요?"

"그렇단다. 우리는 사랑을 하지 않으면 날 수 없단다. 엄마가 한쪽 날개만으로 날 수 있는 건 바로 사랑을 하기 때문이란다."

날기 위해서는 사랑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엄마가 어른이 될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한 것은 바로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사랑을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엄마한테 물어보아도 어디까지나 내 힘으로 사랑을 찾아야 한다고만

할 뿐 더 이상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풀잎아, 사랑이 뭐니?"

나는 길을 가다가 풀잎에게 물었습니다. 풀잎은 그저 말없이 웃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길을 가다가 나랑 똑같이 생긴 새 한 마리를 만나 그만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순간, 내 가슴은 떨려왔습니다. 사랑은 눈이 마주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풀잎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을 무슨 풀잎의 이름인 줄 알았던 나 자신이 우스워 그만 픽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자 그 새도 나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우리는 처음 만나자마자 그렇게 한동안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그렇게 웃음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날기 위하여 서로 사랑을 찾아나섰다는 사실을 곧 알아차렸습니다.

그도 사랑하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이 날기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말과는 달리 우리는 날 수가 없었습니다.

강한 바람이 불기를 기다려 서로 몸을 밀착시키고 함께 날개를 움직였으나 날기는 커녕 그대로 언덕 아래로

곤두박질쳐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엄마한테 대들 듯이 말했습니다.

 

"엄마, 사랑을 해도 날 수가 없어요. 왜 그런 거짓말을 하세요?"

"그건 네가 왼쪽 날개를 지난 새를 만났기 때문이다."

"넌 왼쪽 날개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서로 힘을 합쳐 날기 위해서는 오른쪽 날개를 지닌 새를 만나야 한다.

그러니까 왼쪽 날개를 지닌 새는 오른쪽 날개를 지닌 새를 만나야 하고, 오른쪽 날개를 지닌 새는

왼쪽 날개를 지닌 새는 왼쪽 날개를 지닌 새를 만나야 한다. 그게 우리들의 만남의 불문율이다."

아이 참. 진작 그런 말씀을 해주시지.

나는 엄마한테 그런 말을 하고 싶었으나 속으로 꾹 참고 돌아섰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조용히 나를 불러 세웠습니다.

"아들아, 중요한 것은 사랑에는 어떤 목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랑은 그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있는 게 아니야. 사랑을 하다 보면 자연히 원했던 삶이 이루어지는 거야."

나는 엄마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사랑을 찾아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나의 첫사랑은 분명 날아야 한다는 데에 목적을 둔 사랑이었습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사랑은 곧 파괴되고

만나는 사실에 마음이 쓰라렸습니다. 산다는 것이 생각보다 무척 힘든 일이라고 여겨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아들아, 엄마가 또 하나 빠뜨린 게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랑을 하더라도 진실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 다가왔는지 엄마가 다시 나를 불러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여전히 엷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말했습니다.

"진실로 사랑하지 못하면 우리는 날 수가 없다. 우리가 사랑을 한다는 것은 바로

나머지 날개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들아, 사랑을 잃지 않도록 해라.

사랑을 잃으면 우리는 다시는 날 수 없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네가 먼저 사랑해라.

사랑을 받을 생각을 하지 마라. 줄 생각만 해라. 그러면 자연히 사랑을 받게 되고,

우리는 영원히 나머지 한쪽 날개를 얻게 된다."

나는 엄마의 말씀을 명심했습니다.

그리고 말씀 그대로 노력하고 실천했습니다.

지금 나는 한쪽 날개만으로도 마음껏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어떻게 날 수 있었느냐고요? 그건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아도 아마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정호승 <항아리>-

 

 

저는 해금연주를 좋아합니다.

어젯밤 '캐논의 변주곡'을 해금으로 연주한 것이 있나싶어 찾다가 추노 '비익련리' 연주를 듣게 되었죠.

또 이 연주를 듣다보니 정호승 '항아리'가 읽고 싶어졌더랬습니다.

때론 어른에게도 어른 동화가 필요할때가 있습니다.

늦은 밤 책을 꺼내들까하다 명절에는 책을 꺼내들지 말라는 말씀에 꾸욱 참았습니다. 

따뜻한 한줄의 감동과 지켜봐주고 계시다는 관심에 얼었던 심장이 녹았습니다.

하나하나 '좋아요'를 눌러주지 않아도 한마디에 모든 것들이 담겨있었습니다.

그래서 진심이 느껴졌었습니다. 늘 감사하며 살기로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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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정은 곧은 직선으로 뻗어 있고

어떤 여정은 빙빙 에두르는 길이다.

어떤 여행은 영웅적이고

어떤 여행은 두려움과 혼란투성이다.

하지만 모든 여행은

정직하게만 따르면

정확한 목적지에 닿는다.

 

 

 

 

언젠가 저 강물이 얼어붙는 날

스스로에게 물어 보기를

내가 어떤 실수를 저질렀는지

내가 한 일들이 곧 내 인생인지


사람들이 천천히 머리속에 떠오르네

어떤 이는 도움을

어떤 이는 상처를 주려 했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기를

그들의 지독한 사랑이나 미움이

어떻게 달랐었는지


나 그대의 말을 들으리

그대와 나 돌아서서

저 말없는 강물을 바라보며 기다릴 수 있으니

우리는 알고 있네

저 강물 속에, 흐르는 물살이 숨겨져 있음을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는 것처럼

침묵을 안고 수 마일을 흘러왔고 흘러갈 것을

저 강물의 말이 곧 나의 말임을

-윌리엄 스태포드 <스스로에게 물어 보기를>-



'최고의 진리와 가치가 당신의 삶을 이끌도록 하라.

매사에 최고의 진리와 가치를 기준으로 행동하라.'

당시 바로 그런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그 말의 의미를 더욱 구체화할 수 있었다.

나에게 "네 인생의 목소리를 들어 보아라"라는 말은 바로 마틴 루터 킹2세,

로자 파크스, 마하트마 간디, 도로시 데이처럼 숭고한 목표를 가진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나는 내가 찾을 수 있는 최고의 이상을 늘어놓고는 그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대부분 어처구니없는 결말이었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언제나 그 결과는 비현실적이었고 빈정한 나 자신을 왜곡하는 것이었다.

원인은 나의 내면에서 밖으로 뻗어나간 삶이 아니라 바깥세계에서 안으로 밀려들어온 삶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마음에 귀기울이기보다 영웅들의 인생을 흉내내는 '고상한' 길을 찾았던 것이다.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때 <파커J. 파머>-



"Let your life speak."

내게도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이기도 하다.

앞으로 인생이 나를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에 귀 기울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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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일때 우리의 뇌는 양육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발달했다. 양육자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거나

전달한 감정과 태도,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뇌의 성장에 반영된다. 원만한 양육환경 속에서

자랐다면, 부모님이나 양육자들이 우리의 기분이나 정서상태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보살펴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울고 웃으며 느끼는 것에 대해 적절히 답을 하고 반응해주었을 것이다.

따라서 두 살 정도가 되면 사람의 뇌는 이미 자기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패턴을 갖게 마련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좌뇌 역시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발육된다.

이런 이원적인 발달 덕분에 양쪽 뇌가 어느 정도 통합될 수 있는 것이고, 이때부터 우리는

비로소 좌뇌를 활용하여 우뇌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양육자들이 고의로, 혹은 무심코 아기의 기분을 무시하거나 그 기분에 대해

벌을 준다면 어떻게 될까? 그 시기에는 감정이 일어날 때 그 감정을 처리하는 능력이나 언어로

이해하는 능력을 배워야 하는데, 결정적인 시기를 놓쳐 제대로 연습하지 못하면 그런 능력이

아무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른이 된 이후에도 문제로 남을 수 있다.

그래서 유아기에 양육자들과의 관계가 정상적이지 못했거나, 유아기 이후에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어 안정상태가 깨진다면, 장차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될 확률이 커진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어떻게 이미 지나간

유아기를 되돌려 양육자와 더 행복한 시간을 갖고, 이미 겪어버린 트라우마를 피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지 않다도 방법은 있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지만, 경로를 변경하는

일은 가능하다. 심리치료사들은 '어떤 사람이나 문화의 특징들을 자신의 정신 속으로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두고 '내사(introjection)'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양육의 경험을

내사하여 유아기에 양육자들이 남긴 영향을 계속 떠안고 살아가는데, 그럼으로써 감정, 생각, 반응,

행동의 패턴들이 심화되고 고착된다. 그렇다고 이것을 무조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부모님이 좋은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 후에 우울증에 빠지거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면, 좀 더 온전한 정신을 갖고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그 패턴을 변경해야 할 필요도 있다.

 

 

 

 


그렇다면 이미 익숙해진 생각들의 패턴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불행히도 절대적이고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만병통치약 같은 것은 없다. 옴짝달짝할 수 없는 꽉 막힌 삶에 점점

깊이 박혀버리거나, 반대로 더 압도적이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진다면(혹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경험하는 경우도 있다), 약물치료든 새로운 행동양식이로든 무엇이라도 해서 더 이상의

추락을 막아야 할 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새로운 행동양식'이라는 것은, 인생의 초점을 새롭게

맞추는 것일 수도 있고, 새로운 생각들이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무언가'로부터 도움을 얻는

일일 수도 있다(굳이 내가 이렇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우언가'라는 애매한 표현을 쓴 이유는,

어떤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심리치료 케이스들을 살펴보다 보면, 예외 없이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자기관찰(self-observation), 타인과 관계 맺기, 유익한 스트레스, 개인적인 내러티브(narrative)에 대해서

말이다. 이 네가지는 심리치료와 관계없이 우리의 삶에 활용해보면 좋은 것들이기도 하다.

온전한 정신을 지키고, 성장과 발전에 꼭 필요한 유연성을 갖도록 도와주는 이 네 가지 영역이,

지금부터 우리가 함께 이야기할 이 책의 주제다.

 

1. 자기관찰

소크라테스는 "반성하지 앟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 좀 극단적인 말이긴 하지만,

온전하고 지혜로운 정신을 갖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심판관 같은 태도를 버리고 먼저

자기를 제대로 관찰하는 능력을 꾸준히 키워야 한다. 내 경험에 따르면 자기관찰 능력은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기관찰 훈련을 하다 보면, 가정과 느낌, 생각이 일어날 때, 그리고 그 감정, 느낌,

생각이 기분과 행동을 결정할 때, 그것을 경험하고 인지하고 평가하기 위해 제3자의 시선을

가지게 된다. 이런 능력을 키우면 어려운 일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로운 태도를

가질수 있고 사사건건 판결을 내리려는 태도도 없앨 수 있다. 또한 스스로의 행동방식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생길 뿐만 아니라, 감정과 논리에 귀 기울이고 그 두 가지를 종합할 줄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온전한 정신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기관찰 능력을 최대한 키워 궁극적으로

자기인식(self-awareness) 능력을 높여야만 한다. 아마도 이것은 누구에게나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안는 숙제일 것이다.

 

2. 타인과 관계 맺기

누구에게나 의지를 북돋아주고 격려해주는 안전하고 믿음직한 인간관계가 필요하다.

물론 여기에는 연인도 포함된다. 좀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로맨스가 반드시

행복의 필수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성장을 촉진시켜주는 관계는 꼭 필요하다.

그 대상이 심리치료사이건, 혹은 선생님이나 연인, 친구, 자식 등 누구이건 간에,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 뿐 아니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고, 심지어 슬쩍슬쩍 자극을 주기도 하는

그런 관계가 필요하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만 온전히 존재하며, 지속되는 일련의 관계들을

통해 발전하고 변화한다.

 

3. 유익한 스트레스

올바른 스트레스는 긍정적인 자극을 준다. 그렇다면 과연 올바른 스트레스란 무엇일까?

새로운 것들을 배우면서 창의성이 발휘되도록 자극을 주되, 공황 상태에 빠지거나 일상이

뒤집어질 만큼 위압적이지는 않은 것, 그게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유익한 스트레스다.

또한 유익한 스트레스는 새로운 신경연결을 유도하는데, 이것은 인격의 발달과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4. 개인적인 내러티브

내러티브란, 말 그대로 서사, 서술, 줄거리, 스토리텔링 등의 여러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잘 안다는 것은, 필요할 때 그 이야기를 편집하고 바꿀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의 자아 중 상당 부분이 언어능력을 습득하기 전에

형성되는 탓에, 우리를 이끄는 신념이나 믿음들 중에는 자신조차 모르게 감추어진 것들도 있다.

한편, 우리는 "나는 ...한 사람이다."라거나 "그렇게 ㅎ는 것은 나답지 않아. 난 ...한 사람이 아니니까."

라는 식의 믿음들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바로 그런 자신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본다면, 스스로는 물론이고 타인들과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더 새롭고 더 유연하게

정의할 수 있게 된다.

 

비록 각자가 처한 환경이나 삶에서 벌어지는 사건, 그리고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방법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네 가지 영역은 누구에게나 온전한 정신의 토대가 된다.

 

- 인생학교 <정신>, 필립파 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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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혼란상태(chaos)에 빠져 휘청거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계속되는 삶의 위기들 때문에

정신이 없는 부류다. 두 번째 부류는 바퀴자국 같은 과거의 상처에 꽁꽁 묶인 채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쩔쩔매는 사람들이다. 물론 양쪽 모두에 속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독특한 유전자의 조합을 가지고 태어났고, 각기 다른 성장기를 겪었다.

그런 까닭에 좀 더 용감해지고 개방적인 성격이 되어야 할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자기억제라는 것을(늦었지만 이제라도) 새로 배워야 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타인을

신뢰하는 법을 좀 더 연습해야 할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나 무턱대고 믿어버리는 탓에 분별력을

좀 더 키워야 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또 다른 사람에게는

불행의 원천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유용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해로울 수도 있다.

우리의 뇌가 어떤 과정을 거쳐 발달했는지, 정신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 작동되는 원리는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생각의 방식과 감정변화의 패턴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삶의 방식까지도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뇌에 대해

이해하고 생각해보는 훈련 덕분에, 나뿐만 아니라 내 환자들은 스스로의 삶을 더 능숙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을 '두 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戰車)'에 비유했다. 전차의 기수가 이성(Reason)이라면

두 마리의 말은 각각 기개(spirit)와 욕망(Appetite)이라고 했다. 정신(mind)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와 비슷한 비유를 해왔다. 나 또한 그런 식의 접근법을 활용해, 현대의 신경과학이 밝혀낸 것들과

그 밖의 여러 심리치료적 접근법을 접목시켜보았다.

 

 


그렇다면 먼저 가장 안쪽에 있는 '뇌간'부터 살펴보자. 종종 '파충류의 뇌'로도 불리는 곳이다.

뇌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작동하며 반사작요와 심장근 같은 불수의근(不隨意筋)의 움직임을 맡고 있다.

또한 생명중추의 기능을 담당해 위험한 순간에 우리의 목숨을 구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손가락으로 우리의 눈을 찌르려고 하는 순간에도, 뇌간은 우리가 눈을 감게 만든다.

한마디로 뇌간은 소도쿠 같은 것을 풀 때는 도움을 주지 않지만,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단계에서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준다.

뇌간의 바깥인 중뇌에는 '포유류의 뇌'라고 불리는 변연계가 있다. '감정의 뇌'라고도 불리며,

인간의 감정과 인식, 기분 등을 담당한다. 인간을 비롯하여 모드 포유류들은 흥분하면 으르렁거리고,

공포를 느낄 때는 움츠리며, 애정을 표현하려고 꼬리를 흔들기도 하는데, 이 모든 감정적인 행동들이

바로 중뇌의 발달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진화한 것이 전뇌다. 전뇌는 '인간의 뇌'라고 불리며 이성을 담당한다. 학습, 기억력,

지력을 담당하고, 추론, 의사결정, 언어이해, 자발적 움직임 등의 지적 사고를 조절한다.

한편 우리의 대뇌는 자뇌와 우뇌로 나뉘어져 있고, 가운데에 위치한 뇌량이 다리 역할을 하며

자뇌와 우뇌를 이어준다. 흔히 알려진 바와 같이 좌뇌는 논리적이고, 순차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

말하기, 쓰기, 독서, 듣기(청각)를 관장하며, 언어, 논리, 추론 같은 조직적인 활동을 담당한다.

반면 우뇌는 불규칙적이고, 바조직적이며, 직관적이고 전체론적이다. 감정과 촉각으로 인식하고,

공간감각, 형태의 인식, 음악, 예술, 색감, 창의력, 시각화와 같은 비언어직인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우뇌와 좌뇌는 평생에 걸쳐 계속 발전하지만, 태어나서 다섯 살이 될 때까지 대부분의 발달이

이루어진다고 보면 된다. 각각의 뇌세포들은 혼자서는 아무일도 할 수 없다.

뇌세포들이 제기능을 수행하려면 다른 뇌세포들과 서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우리의 뇌는

일련의 발달과정을 통해 각 뇌세포들을 연결하는 신경경로(neural pathway)를 경로한다.

그런데 이런 뇌세포의 연결은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우리의

뇌 발달은 유전적인 요인보다는 유년기에 형성되는 인간관계와 더 깊은 관련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타고난 본성보다는 후천적 양육환경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이 사람과 저 사람이 다른 이유는, 대체로 아주 어린 시절에 겪은 일상적인 경험들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상 우리의 경험이 뇌의 문제를 결정짓는 셈이다.

 

생후 2년 동안 우뇌는 아주 활발하게 움직이는 반면, 좌뇌는 잠잠한 상태에서 그다지 활동성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뒤로 몇년 사이에 발달의 양상이 뒤바뀌어, 우뇌의 발달은 둔해지고

좌뇌는 괄목할 만한 활동의 시기에 돌입한다. 우뇌에 깔리게 되는 신경경로는 유아기에 만들어지는데,

그 토대는 타인들과의 유대나 형성이나 결합의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타인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스스로에 대해 전반적으로 얼마나 편안하게 느껴지는지,

기분이 상한 후에 얼마나 빠르게(혹은 더디게) 감정을 스스로 추스를 수 있는지에 좌우된다는 말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뇌는 주로 감정과 직관, 비언어적인 부분을 담당한다.

타인과의 공감, 조화, 관계에 관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뇌는 좌뇌보다 먼저 발달할 뿐만 아니라

이 시기 내내 지배적인 위치에 있다. 그래서 힐끗 쳐다보거나 냄새를 한 번 맡는 것만으로도

우뇌는 어떠한 상황이든 판단하고 파악한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 장님이 된

글로스터 백작이 주위를 둘러보며 "나는 느낌으로 본다."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반면 좌뇌는 주로 언어, 논리, 추론을 담당한다. 우리는 경험을 언어로 처리하기 위해, 혹은 생각과

아이디어를 우리 자신과 타인에게 분명히 표현하기 위해, 또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좌뇌를 활용한다.

논리와 증거를 증시하는 과학은 자뇌 덕분에 발전해왔고, 분류학, 철학, 언어학 같은 분류 및

정리 부문의 학문들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태어나서 첫 2년 동안에는 좌뇌의 발달이

우뇌에 비해 현저히 더디다. 언어와 논리력을 갖춘 자뇌가 영향력을 발휘하기 전에 먼저 우뇌가

활발히 발달됨으로써 성격의 토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우뇌가 여전히 우위를 갖는

경향에 대한 이유일 수도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간혹 분별 있는 행동을 해야만 하는 이성적인 이유가 분명히 있는 데도, 나도 모르게 엉뚱하게 튀어나와

곤란했던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뇌의 분별 있는 부분(좌뇌)이 언어기능을 담당하고 있는데도,

종종 다른 부분(우뇌)이 그 언어기능을 조종하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내가 방금 무슨 헛소리를 한 거지? 하는 경우). 이것이 바로 우뇌의 우위가 드러난 경우다.

 

- 인생학교 <정신>, 필립파 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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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신 것처럼 참 슬픈 이야기예요. 그리고 아저씨가 절 도와주실 것도 별로 없고요."

어린왕자가 매듭짓듯 말했어. 나는 이미 어린왕자의 모험담에 푹 빠져서 이야기가 끝날 때쯤에는

자동차가 저절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니까.

"그래, 슬픈 이야기구나. 하지만 내가 널 도울 수 없을 거라는 말은 틀린 것 같은데?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어린왕자는 얼른 방어적 태세를 취하며 말했어.

"정말 모르시겠어요? 별들을 웃게 해 주던 친구를 잃어버렸다고요. 오후마다 함께 지낸 양,

즐거움과 아름다움으로 제게 힘을 불어넣어 주던 꽃도 잃었고요. 저를 지켜 주고 조언도 해 주던

잡초도 다신 볼 수 없단 말이에요. 게다가 화산 폭발 때문에 제 작은 행성도 틀림없이 함께 터지게

될 거라는 걸 정말 모르시겠어요? 그런데도 정말 아저씨가 절 도와줄 수 있다고요?"

어린 왕자는 화가 난 듯 따져 물었어. 갑자기 흥분해서 그런지 양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서 말이야.

"그렇다니까." 나도 확신에 차서 대답했어.

"난 네가 잃어버린 모든 것, 아니 그 이상을 네가 찾을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어. 어찌 되었든

네가 잃어버린 것은 바로 삶의 기쁨과 행복 그 자체가 아니겠니. 네가 허락만 해 준다면 도와줄게.

하지만 너도 기꺼이 너 자신을 돕겠다고 결심해야 해."

어린왕자는 의심스러운 눈길로 날 바라보았어. 하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더라고. 그래서 나는 이야기를 계속했어.

 

"이게 네가 살아오면서 처음 겪게 된 어려움이구나. 그렇지만 이건 네가 해결해야 해. 분명한 건 설령

그것 때문에 좌절하더라도, 그것으로 세상이 끝나지는 않는다는 거야. 네가 이 상황을 극복하고 싶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되거든. 그런데 그러려면 너의 영적인 본성과 동물적 본능 두 가지가 다 필요해."

"저 자신이 그걸 느끼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아저씨는 제가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충분히 갖고

있다고 확신하세요?"

"내가 보는 눈이 좋거든."

드디어 어린왕자가 내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해서 마음이 뿌듯해졌어.

"내가 왜 그렇게 확신하느냐고? 우선 너는 네 작은 별에서 분명히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데도 그걸 포기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지구로 올 만큼 대단한 용기를 지녔잖니. 다음으로 힘이 다 없어졌다고 느꼈을 때도

너는 거기에 힘겹게 버티고 누워 있었어. 거긴 누군가가 널 도와줄지도 모를 곳이잖아. 만약 그때 네가

고속도로 한복판이나 벌판 한가운데에 누워 있었다면 아마도 지금쯤 넌 죽었을 거야. 마지막으로 우리가

처음 나눈 이야기는 문제와 어려움에 관한 것이었잖니. 그건 네가 처한 막다른 상황을 이겨 내기 위해

유용한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한다는 뜻이거든."

내 말이 맞는다는 듯 어린왕자가 수긍하는 눈빛을 보였어.

"아까 우리가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잖니. 네가 간절히 원한다면,

지금 네가 처한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해. 네가 그걸 이겨 낼 수 있다는 걸 알기때문에

내가 어려움에 대해 말했던 거야. 비록 네가 그것을 확신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바로 너 자신 안에 있어."

그랬더니 어린왕자가 곧바로 되받아치며 말했어.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죠? 내 친구가 날 속였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제 삶은 평화롭고

행복했단 말이에요. 바로 그 사실이 제 모든 불행의 원인이란 말이에요."

어린왕자는 화가 난 것 같았어.

"너는 문제를 밖에서만 찾으면서 지금 네가 처한 상황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잖니. 그건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야."

나는 나직하게 말했어. 반면 나를 보는 어린왕자의 눈은 마치 내 눈을 태울 듯이 이글거렸어. 뭔가

설명이 더 필요한 것 같았지. 그래서 어린왕자가 말을 하기 전에 내가 얼른 말을 이었어.

 

"속임수라는 것도 알고 보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었거나 혹은 적어도 네가 상상하는 그런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 거야. 하지만 일단 잠깐이나마 네 친구가 정말 널 속였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네가 화를 낼 만도 하고 환멸을 느낄 수도 있고 심지어 슬퍼하는 것도 당연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네가 꽃의 아름다움과 저녁 노을이 들려주는 시나 별들의 음악 소리를 더 이상

즐거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돼."

나는 어린왕자가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걸 보고 좀 더 나긋나긋하게 계속해서 말했어.

"네 말처럼 그 친구는 속임수로 네 삶을 뒤흔들어 놓았어. 인생의 기반이라는 게 원래 그렇게

허약하기 짝이 없거든. 아마도 네 양도 더 이상 네게 위안이 되지 못했고, 꽃은 자기중심적이었으니까

그것도 네가 원하는 것을 채워 주지 못했을 거야. 늘상하는 허드렛일들도 네 영혼을 채우지 못했던 것이

뻔하고, 게다가 너는 잠시 도피처가 될 수 있는 취미도 없잖니. 아마도 너의 현실은 활기가  없어지고

그거 매일매일 널 묵묵히 버틸 수 있게 만든 것이라곤 이제는 없는 친구에 대한 추억뿐이겠지.

그러니 널 지탱해 주던 단 하나마저 무너져 버리자 모든 게 헛된 것이 되고 말았던 거야.

사실 너의 세상이라는 것도 이미 텅 비어 있던 것이 아닐까. 네가 떠나기 전에 이미 시들어 버린 꽃처럼

말이야. 네가 말하는 그 친구의 속임수라는 게 유일한 실마리였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지금 네가 처한

상황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 이런 점을 일찍 받아들일수록 넌 더 빨리 성장할 거야."

 

나는 어린왕자의 내면에서 여전히 모든 것을 정당화시키려는 마음과 이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갈등을 일으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어. 그래서 얼른 내가 외부의 관찰자로서 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어.

"그렇지만, 네가 너 자신에 대해 확신하고 너의 감정을 더 믿었다면, 잡초가 네 마음을 비집고 들어와

그렇게 쉽게 틈새를 만들어서 네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을 거야."

어린왕자가 내 말에 반박하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그러니까 잡초를 옹호라려고 할 때

나는 얼른 숨을 몰아쉬고 다시 말했어.

"왜 우리는 흔히 꿈을 주는 사람보다 그것을 깨는 사람의 말을 더 신뢰할까?"

내 물음에 어린왕자가 순간적으로 당혹스러워했지만,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 계속해서 말했어.

"도와주려는 거라고 변명하면서 네 꿈을 산산조각 내는 그런 사람들을 믿으면 안돼!

왜냐하면 대개 그런 사람들은 말만 하지 실제 아무것도 해 주는 게 없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문득 불길한 소식을 들고 온 사람을 죽이는 고대의 관습 가운데 뭔가 괜찮은

지혜가 없는지 궁금해졌어. 여러 해 동안 내가 겪어 온 것들을 생각해 보면 소식이라는 게

대부분의 경우 틀렸거나 의도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말이야. 그것도 아니면 사실 아무것도

이루어진 게 없었으니까. 만약 나였다면 되도록 나중에 듣고 싶어 했을 거야.

그렇게 내 이야기는 계속되었어.

"조만간, 모든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니게 돼. 인생이라는 꿈에서도 죽을 때가 되면 깨잖아.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있겠고. 네 친구는 네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양을 주었고

그건 바로 네가 꿈속에서 그토록 바라던 양이었을 거야, 네가 보살펴 줄 수 있는 유일한

양이자 너의 작은 별에서 너와 함께 지낼 수 있는 그런 양이라는 말이야. 저녁 노을이 드리울 때

네 친구와 함께 즐겁지 않았니? 밤에는 네가 그 시간에 외로움을 느끼고 싶지 않은 것처럼

혹시 네 양이 외로워하지 않을까 싶어서 가 보기도 했겠지? 네가 그 양을 길들였으니

그건 바로 네 것이고, 마찬가지로 너 역시 양의 것이 되었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어?

분명히 네가 사진에서 본 양보다는 훨씬 생생하게 살아 있는 양이었을 거야. 왜냐하면

사진 속의 양은 그냥 한 마리의 양일 뿐이지만, 다른 양은 바로 너만의 양이니까."

 

그때 문득 내가 여행할 때 사랑하는 가족들의 사진을 챙겨 다니지 않는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어. 가슴속에 담긴 가족의 모습이 사진보다 훨씬 생생하니까.

천천히 차를 몰다가 조용히 길가에 차를 세웠어. 마치 이제는 마음 놓고 울고 싶다는 듯,

어린왕자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거든.

"고맙습니다"

어린왕자가 그렇게 말하면서 날 껴안았어. 그러고는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대더니

이내 천천히 잠들어 버렸어.

 

- 어린왕자 두 번째 이야기-

 

 

*'어린왕자 두 번째 이야기' 역시 아껴 읽고 싶은 책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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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인생 -프리드리히 횔덜린-

 

노란 배가 열리고

들장미가 만발한

대지는 호수에 매달리네.

우아한 백조들은

입맞춤에 취한 채

신성하게 깨어있는 물속에

머리를 담그네.

허나 겨울이 오면, 내 어디에서

꽃을 찾고, 어디에서

햇빛과 대지의 그늘을 찾을까?

장벽은 말없이 차갑게 서 있고,

바람결에 풍향계는 달그락거리네.

 

 

 

 

기억에는 또 다른 변덕스러운 특성이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기억하기를 바라는가의 문제는 얼마나 많은 기억을 견디는가의 문제와

맥락을 같이 해야 한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망각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억하는 것이 언제나 좋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망각할 줄도 알아야 한다.

잊어버리는 방법을 모르면 자신이 다른 사람의 삶에 얼마나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쳐왔는지 직시하게 된다.

이런 상황은 반대의 상황, 즉 다른 사람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악영향을 미쳐왔는지 깨닫는 것 보다 훨씬 더 견디기 어렵다.

사람들이 기억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으로 인해 통제력과 자유가 생긴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언가를 기억한다면 언젠가는 내가 누구인지를 한층 더 잘 파악하고 통제할 줄 알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순진할 정도로 낙천적인 생각인 것도 맞다.

달리 생각해서 내가 누구인지를 더 잘 파악하게 된다면 오히려 절망감을 느끼는 수순을 밟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저지른 끔찍한 일들을 기억한다고 해서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상처를 주었는지,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납득해버린다면 도리어 그런 행위를 다시 할 가능성이 한층 더 커질지도 모른다.

자신이 지금껏 저지른 일을 정제(精製)하여 인식하다 보면 자기 기만을 고치기 더 힘들어지고

잘못을 자각하기가 한층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지금 하는 행동을 감지하는 정제된 감각이 스스로를 속여 내가 옳은 일을 한다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

핵심을 오해하지 말라.

기억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기억할 때와 망각할 대를 구분하라는 의미이다.

물론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언제나 이리저리 흔들리겠지만 그래도 항상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의 경우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친아버지가 다름 아닌 H란 사람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쁘냐는 질문을 받는다. 어떤 이는 사실을 모르는 게 더 좋았을 것 같은지 물었다.

나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모르던 시적의 기분을 기억해내야 한다. 그래야 사실을 아는 경우와 모르는 경우가

본질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조금이나마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나는 더 이상 사실을 몰랐던 시적의 기분을 기억하지 못하므로 어느 편이 더 좋은지 말하지 못한다.

지금도 진실을 알지 못했다면 기분이 어떠했을지 상상할 수 없다.

지금은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상상력이 모자라거나 없어서그렇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주길.

상상력보다는 기억력의 특성과 관련된 문제이니까. 기억력 자체가 상상력을 제한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정한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쓰면서 기억이라는 함정에 스스로 갇혀버렸다.

망각하기 위해서 이 모든 일을 기억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에서 지난 일들을 지워버리기 위해 글은 쓴다. 하지만 지난 기억들을 잊어야만 한다면

나는 더 이상 지금의 내가 아니리라. 그리하여 나의 기억하기 행위는 동시에 망각하기가 될 것이다.

이는 기억이 망각의 수단이라서가 아니다. 애초에 기억과 망각은 둘이 아닌 하나의 동일한

존재가 될 운명을 타고났다. 완전한 자기 일치와 자기 치환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더이상 지금의 내가 아니기를 바란다는 뜻일까? 아니, 나는 지금 그대로의 나이면서

동시에 지금의 나에게서 자유로워지기를 원하다. 아마도 중년이란 시기가 이런 환상이 펼쳐지는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의 변덕스러운 특성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청춘에 비해 중년에 무언가를 많이

상실한다는 현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청춘이란 과연 무엇이며 중년이 되면 정확히

무엇을 잃어버리는지를 명확하게 밝히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그저

어떤 기분을 잃어버리는지도 모른다. 정확히는 청춘의 기분이다.

그리고 이런 기분은 그 자체로 산만하고 모호하다. 만약 열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는 향수와 상실감의 중심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전체적으로 특성이 없고 전혀

특별하지 않은 존재인 자신의 청춘뿐이라고 대답하리라.

때로 우리는 이러저런 순간이 행복이나 자유라고 정해버리고 이것을 잃어버려서 후회스럽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지난 일을 후회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느꼈던 청춘의 기분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중년에

상실감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말하지 못한다.

같은 의미에서 우리는 음악 한 소절, 시 한 구절에 감동받을때 느끼는 감정을 한가지 방식으로만 받아들인다.

음악이나 시의 어떤 부분이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지 말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물론 단 한 마디의 설명도 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대체적으로 무엇으로 인해

감동을 받는지 제대로 이해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청춘의 기분 역시 아무리 묘사하려고 노력해도 그저 막막할 뿐이다. 어쩌면 삶이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다거나

그것이 망쳐지기 전에 느꼈던 기분이라고 설명할 사람도 있으리라. 이를테면 삶이란 온통 타협과 손상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파악하기 전의 기분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미 말했듯 우리는 이보다 더 정확하게

묘사할 능력이 없으므로 언어 자체가 점점 멀어지는 먹먹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가 바닥이 나거나

적절한 단어를 되찾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것은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의 상태가 감정, 기분 등을

정확히 설명할 말이 없다는 인식만이 아니다. 마치 언어가 세상을 더 이상 파악하지 못하는 듯한,

마치 세상이 언어 위에서 미끄러지거나 다시는 영향을 받지 않을 듯한 느낌이다.

어쩌면 이런 기분의 모호함은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인 장아메리가 제시한 몇 가지 생각으로 인해

다소 희석될 수 있다. 그는 노화에 대한 연구를 담은 저서 '노화에 관하여(On Ageing)'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젊은이들이 허둥지둥 휘말리는 미래란 결코 시간이 아니다.

이것은 세상이며, 보다 정확히 말하면 공간이다.

젊은이들은 앞으로 시간이 창창하다고 제 스스로 말한다. 하지만 이들의 앞날에 정말로 놓인 것은

세상이다. 이들은 세상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세상의 평가가 내려지도록 내버려둔다. 나이든 사람들은

시간이 등 뒤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지만 더 이상 절실하게 살아지지 않는 삶이란 그저 차곡차곡 모인,

살아온, 흘려버린 시간에 불과하다. 우리 앞에 남은 시간이 적다고 생각할수록 우리 내면의 시간은

더욱 많아지는 법이다. (...) 나익 드는 것 또는 단지 늙어간다는 기분이 드는 것조차도 사람의 몸과

영혼에 시간이 있다는 뜻이다. 젊다는 것은 결코 시간이 아닌 인생이자 세계요, 공간인 한 시절속으로

자신의 몸을 디던지는 것이다.

 

나이든 사람들의 현재와 미래는 과거에 집어 삼켜진다. 나이든 사람은 내면에 시간이 있다.

중년이란 압박이 시작되는 시기이며, 중년인 이들은 현재와 미래가 과거의 뒤안길에서

날아온 압박에 옭아매 진다고 느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젊은 시절 즐겨 듣던 음악에 다시 심취하면서

서서히 짙어지는 중년의 향수는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해로울 수밖에 없다. 음악이 잃어버린 세계를

되돌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애초에 있는 그대로 경험했던 세상이다. 그리고 이제는

시간 안에 있는 세상 즉, 인간 내면에 있는 시간 속으로 깊이 스며든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이현상은 심리적인 모순 혹은 정신적인 모순이다.

인간이 공간이나 시간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깨닫는 순간은 세상을 상실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이때 인간은 마치 옴짝달짝할 수없을 정도로 질척한 액체로 점점 채워지는 세상 속에 떠 있는

빈 배와도 같다. 이처럼 중년은 서서히 멈춰가는 기분을 느끼는 시기다.

-크리스토퍼 해밀턴 <중년의 철학>-

 

 

중년이란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중년은 신체의 기능이 정점에 도달하는 동시에 붕괴가 시작되는 시기이다.

보통 이 시기가 되면 지나온 인생의 궤적과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한다.

때로는 시간이 알마 남지 않았다는 조급한 마음 때문에 심각한 불신과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기도 한다.

중년에 느끼게 되는 다양한 감정들, 예를 들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

계획했던 일을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감, 후회, 외로움, 자아 상실감 등은 대부분 어둡고 비관적이다.

그러나 이는 가족을 위해, 부모를 위해 그리고 야망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질 수 있는 값진 감정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크리스토퍼 해밀턴은 자신이 중년이 되었을때 느꼈던 생각과

기분을 철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했다.

그 결과 쇼펜하우어, 니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라킨, 엘리엇에 이르는

위대한 사상가들이 '중년의 위기'에서 빠져나오게 된 순간을 예리하게 찾아냈다.

젊은 날의 허영심과 자기만이 사라진 지금, 중년이 된 당신은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소설가 조지 오웰은 "누구나 중년이 되면 자기에게 어울리는 얼굴을 갖게 된다"라고 말했다.

 

 

"당신 참 열심히 살았군요!"

 

 

 

 

Posted by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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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 맡는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는 영원 회귀의 사상 무거운 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테를 드러낸다.

그러나 묵직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가장 무거운 짐이 우리를 짓누르고 허리를 휘게 만들어 땅바닥에 깔아 눕힌다.

그런데 유사 이래 모든 연애 시에서 여자는 남자 육체를 하중을 갈망했다.

따라서 무거운 짐은 동시에 가장 격렬한 생명의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이것이 기원전 6세기 파르메니데스가 제기했던 문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세상은 빛-어둠, 두꺼운 것-얇은 것, 뜨거운 것-찬 것, 존재-비존재와 같은

반대되는 것의 쌍으로 양분되고 있다.

그는 이 모순의 한쪽 극단은 긍정적이고 다른 쪽 극단은 부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이론은 모든 것을 긍정적인 것(선명한 것, 뜨거운 것, 가는 것, 존재하는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나누는 극단적 이분법이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로 안이하게 보일 수도 있다.

단 이 경우는 예외다. 무엇이 긍정적인가? 묵직한 것인가 혹은 가벼운 것인가?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답했다.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미묘한 차이는 존재하지만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도 있고 구별해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

권태안에서도 극복할 수 있고 행복을 찾아낼 수 있것만

순간의 즐거움과 자극만을 행복이라 착각하며 즐거움이라 쫓는 사람들..

순간의 즐거움은 있을지언정 그래서 자기만의 것이 없는 사람들은 늘 삶이 허무하다.

가끔씩은 EVEREST COFFEE와 함께 밀란 쿤데라를 만나 볼 필요가 있다.

 

 

 

 

Posted by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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