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서 혹은 대중심리서를 많이 읽었거나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심리치료사들의 강의를

자주 들은 사람이라면, 인생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남들보다

더 잘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심리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경험한 일에 대해 비슷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10대 청소년 시기를 지날 때, 직업을 갖게 되었을 때,

과도한 업무에 시달릴 때 그리고 점차 나이를 먹어 늙어갈 때 등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표준적인 범주에서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인간의 DNA 차이로 인해 처방약에 대한 반응이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므로

같은 질병이라 해도 환잔에 따라 치료법과 처방약이 다르다고 안내한다.

물론 유전자가 동일한 사람은 없다는 매우 근원적인 전제하에 말이다.

예를들어, 환자의 혈전을 안전하게 예방할 수 있는 혈전치료제의 투여랑은 환자가 약물을 얼마나 빨리

흡수할 수 있는 유전자를 자졌는가에 달려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삶에서 맛보는 좌절이나 기쁨, 사회적 관계나 연인 관계 등에서 겪는 난관이나

즐거운 경험들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이를 어떻게 새로운 역량으로 키우는지는 개인마다 다르다.

사람마다 DNA가 다를 뿐만 아니라 뇌 활동의 패턴도 다르기 때문이다. 환자의 DNA를 해독하게

됨에 따라 미래 의학분야의 전개 방향이 달라진 것처럼, 우리 각자의 개성을 설명할 수 있는 정서적 기질과

정서 상태를 좌우하는 뇌의 특징적인 패턴을 이해함으로써 오늘날 심리학의 전개 방향이 달라지고있다.

 

유사한 배경에서 살아왔으나 동일한 인생 경험과 사건에 처했을 때 매우 극적으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목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스트레스에 직면했을 때 어떤 사람은 잘 극복했지만

어떤 사람은 완전히 무너졌다. 후자의 경우 그들은 매우 불안해하고 우울해하며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반면 전자는 좌절을 잘 극복하고 이겨낼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오리혀 이를

통해 이득을 보기도 했다. 이것이 수수께끼였다.

저자는 이혼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실직, 그 외에도 많은 좌절에 처했을 때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반응을 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고 한다. 반대로, 진정한 쟁취했을 때나 일에서

성공을 거두었을 때처럼 인생에서 좋은 일이 생길 때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나타내는 이유도

궁금했다고 한다. 왜 이처럼 수많은 삶의 굴곡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다양한 정서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연구를 통해 얻은 답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정서 유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서 유형은 그 종류와 강도, 지속 시간 등에 매우 다양한 정서 반응과 대처 대응력 등을

합한 것이다. 독특한 지문과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저마라 독특한 정서 프로파일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던 연인과 헤어지는 일처럼 아픔을 겪게 될 때도 어떤 사람은 굉장히 빠르게 회복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자기비하와 절망으로 나락에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를 파악하고 설명하는 데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정서 유형이다. 같은 부모님 밑에서 자란 형제와 자매라고 하더라도

누구는 실직을 해도 금방 떨치고 이어나는 반면, 누구는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자신이 무능력하다고

생각하면서 좌절하는 이유도 정서 유형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자녀가 학교야구 경기에 잘못된 판정을 받아 퇴장당한 상황에서, 그냥 무시해 버리는 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흥분해서 소리를 질러대는 아버지도 있다. 이 역시 정서 유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주변의 많은 친구들에게 끊임없는 위로의 원천이 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가족과 친구에게 절대적인 지지와 위로가 필요한 상황에서조차 냉랭하게 행동하는데, 이 역시

정서 유형의 차이에서 온다. 또 어떤 사람은 타인의 비언어적 표현과 목소리의 톤 등을 마치

광고판의 문구처럼 명확하게 읽어내는 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를 마치 제2외국어를 대하듯이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러한 차이도 정서 유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람의 반응을 결정하는 정서 유형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 수많은 질문이 쏟아질 수 있다.

청년기 초반에 분명히 드러나는 정서 유형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인가,

정서 유형이라는 것이 일생 동안 변하지 않고 계속 유지되는가 등의 질문들 말이다.

또 정서 유형이 신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서 유형의 차이가 뇌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다음에 따라나와야 할 질문은 정서 유형이 우리의 신경 회로와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정서 유형이 변화될 수 있는 것인지이다.

그리고 정서 유형은 변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가 삶의 희로애락을 다룰 수 있는지와 관련된

질문도 중요하다. 이제 뇌가 우리의 정서 유형을 어느 정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뇌는 변화를

어떻게 측정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남았다.

 

궁금하다면 리처든 J. 데이비드슨이 쓰신 '너무 다른 사람들'을 추천한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 1984년부터 현재까지 위스콘신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로 재직중이시다.  그리고 인간 뇌 활동에 관해 연구하는 와이즈먼 실험실과

신경과학적 정서에 관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Posted by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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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는 그냥 가볍게 읽기 좋은것 같다.

하지만 그 가벼운 이야기 안에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메시지가 들어 있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중 '거울 속의 저녁노을'을 읽고 어젯밤 빵~~ 웃음이 터졌다.

바자회 가서 말할 줄 아는 개와 아내를 바꿔왔다니... 발상이 너무 재미있었다.

옛날 일을 생각하는 주인에게 개가 말한다.

"옛날 일 따위 되짚어 봤자 비참해질 뿐이죠. 참 이해할 수가 없네. 비참한 인간이 꼭 더 비참해지려고 하니....."

개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우리는 정말 옛날 일을 되짚으며 더 비참해지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을지 모른다.

앞으로 좋은 추억 만들어 나가기에 짧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건 지도....

아쉬움이 남든다면 다시 용기내서 도전하면 되는거고... 

후회가 남지 않게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털어내면 되는거고...

그렇게 난 개의 말에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는(우리라 함은 물론 나와 개를 말한다) 아이들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오두막에서 나왔다.

내가 머리맡에 앉아 '1963년도 판 조선 연감'을 소리 내어 읽는 사이에(오두막에는 그것 말고 다른 책은 없었다)

아이들은 금세 잠에 빠져들어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총 배수량 23652톤, 전체 높이 37.63미터...." 따위의 문장을 주절거리고 있으면 설령 코끼리 떼라도 잠들어버린다.

"저, 주인어른." 개가 말했다. "산책이라도 하러 나가요. 오늘 밤은 달님이 무척 아름다워요."

"좋고말고."

이처럼 나는 말할 줄 아는 개와 생활하고 있다. 물론 말할 줄 아는 개는 극히 드물다.

말할 줄 아는 개와 살기 전에는 아내와 함께 살았다.

작년 봄 시내 광장에서 바자회가 열렸는데, 나는 거기서 말할 줄 아는 개와 아내를 바꿨다.

거래한 상대와 나 둘중 누가 이득을 보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아내를 사랑했지만, 말할 줄 아는 개는 그 무엇보다도 희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와 개는 강을 따라 비스듬한 언덕을 올라 그대로 숲으로 들어갔다. 때는 7월, 매미와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사방에

가득했다.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달빛이 오솔길에 드문드문 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걸으면서 나는 지나가버린

과거의 나날을 떠 올렸다.

"주인어른, 무슨 생각 하는데요?" 개가 물었다.

"옛날 일." 나는 대답했다. "젊었을 때 일"

"잊어버리세요" 개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옛날 일 따위 되짚어 봤자 비참해질 뿐이죠. 참 이해할 수가 없네. 비참한

인간이 꼭 더 비참해지려고 하니. 아시겠어요...."

"이제 그만해." 나는 말했다. 그러고는 잠자코 걸었다. 개는 주인에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아무래도 내가 개를 지나치게 오냐오냐 대한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 봄 바자회에서 또다른 무언가와 개를 교환하게 될 것이다.

아내를 되찾지는 못해도 하프를 켤 줄 아는 산양 정도는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개는 그런 나의 생각을 눈치챈 듯했다.

"그렇게 말할 생각은 아니었는데요." 개가 변명했다. "주인어른은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저만치 갔다가 돌아오자." 나는 말했다. "숲속의 밤은 무서우니까 말이야."

"정말 그래요. 숲속의 밤은 무섭죠." 개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밤의 숲속에서는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죠.

예를 들면 거울 속의 저녁노을이라든지..."

"거울 속의 저녁노을?" 나는 깜작 놀라 되물었다.

"그런 게 있어요. 오래된 전설이죠. 엄마 개가 강아지들을 겁주려고 할 때 흔히 하는 얘기에요."

"흐흠." 나는 웅얼거렸다.

"어때요. 이쯤에서 조금 쉬어갈까요?"

"좋고 말고." 나는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거울 속의 저녁노을 얘기를 좀더 자세히 들려주지 않을래?"

"내년 봄 바자회에 절 내놓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신다면요. 저, 이 나이에 또 개장에 갇혀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 않거든요."

"약속하지" 나는 말했다.

개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발에 묻은 흙을 나무뿌리에 비벼 털어내고서 천천히 얘기를 시작했다.

" 이 부근 개들은 다 아는 얘기예요. 이 드넚은 숲속 어딘가에 수정으로 된 작고 동그란 연못이 있대요. 수면은 마치

거울처럼 매끈매끈하고요. 그리고 거기에 늘 저녁노을이 비친다는 거예요.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늘 저녁노을이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글쎄요." 개는 으쓱했다. "아마 수정이 기묘하게도 시간을 빨아들이는 모양이죠. 정체 모를 심해어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그건 아주 위험하겠지?"

"네, 그 광경을 본 사람은 모두 거기로 뛰어들고 싶어진대요. 아무튼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운 저녁노을이거든요. 그리고

한번 뛰어든 사람은 영원히 그 저녁노을의 세계 속을 헤매다니게 되죠."

"그리 나쁘지 않은데."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개는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하지만 대개의 일들은 실제로 해보면 생각했던 것만큼

재미있진 않은 법이죠. 두 번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경우에는 더더욱이요."

"난 저녁노을 좋아해."

"참 나, 저는 뭐 안 좋아하는 줄 아세요."

한동안 나는 말없이 담배를 피웠다. "그런데, 넌 실제로 그.... 거울 속의 저녁노을이란 걸 본 적 있니?"

"아니요." 개는 고개를 저었다. "본 적은 없어요. 부모님에게서 얘기를 들었을 뿐이죠. 부모님은 또 그 부모님에게서 들었고요.

말했잖아요. 오래된 전설이라고."

"그걸 본 개는 없단 말이지?"

"그걸 본 개는 모두 그 저녁노을 속으로 끌려들어갔다니까요."

"알 것 같기도 한데"

"사람이건 개건 생각하는 건 얼추 비슷하죠." 개가 말했다. "자 이제 그만 돌아가요."

우리는 왔던 길을 되짚어 묵묵히 걸어갔다. 풀고사리 잎이 밤바람에 바닷물처럼 일렁이고, 새하얀 달빛 속에 꽃향기가

떠다녔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가까워졌다가는 멀어지고, 밤의 새는 금속 조각을 비벼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울었다.

"피곤하세요?" 개가 물었다.

"괜찮아." 나는 말했다. "기분이 아주 상쾌하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개는 말했다.

"그건 그렇고." 나는 말했다. "아까 한 얘기, 전부 네가 멋대로 꾸며닌 거지?"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왜....."

"괜찮으니까 사실대로 말해봐."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눈치채셨어요. 역시?"

"당연하지."

개는 떨떠름하게 웃으며 머리를 갈작갈작 긁었다. "그래도 재미나는 얘기였죠?"

"하긴." 나는 말했다.

"하지만 잊어버리면 안 돼요. 내년 봄 바자회 얘기 말이에요. 주인어른이 틀림없이 약속하셨으니까."

"알고 있어."

"개장 안에만은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개는 말했다.

우리는 오두막까지 남은 길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었다. 아무튼 달이 지독히도 아름다운 밤이었다.

 

 

 

 

Posted by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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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 감정이 오가는 송신기요, 수신기다.

눈을 통한 감정의 교류는 동물도 할 수 있지만,

서로 꼭 잡은 손은 동물이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교류방식이다.

손을 잡는 것은 오로지 인간만이 가능한 통신 수단이다. 부부나 연인끼리 손을 맞잡고 걷는 것은 필수다.

팔짱을 끼는 것은 이별과 분리에 대한 거부의 몸짓이며, 의존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서로 손을 맞잡은 것은 애정의 확인이며, 혼자가 아님을 선언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신분석에서 다루는 핵심적인 감정 가운데 하나가 '이별 불안'이다.

이 불안은 엄마에게서 떨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걸음마를 배울 때

넘어지면 엄마가 곧바로 달려와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준다.

엄마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믿음이 우리를 안심하게 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모든 사물에 대한 신뢰감을 심어주는 초석이 된다.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나중에 커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손을 잡고 걸어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걸어라.

중요한 것은 둘이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걸어간다는 것이다. 마냥 마주보고 걷기만 하면 앞을 보기 어렵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남녀가 서로 포옹하고 키스하는 장면이 아니라,

서로 손을 꼭 잡고 정겹게 걸어가는 모습이다. 손을 마주잡고 오래도록 걸을 수 있는 남녀는 행복하다.

물론 애들을 낳으면 엄마, 아빠 사이에 끼어들어 둘 사이를 떼어놓으려 들지만

애들이 다 크고 나서도 여전히 부부가 서로 손잡고 걸을 수 있다면,

그리고 백발이 되어서도 계속 그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을까.

그럴 수 있는 손이라면 서로 가려운 등을 긁어줄 수도 있고, 서로 손톱을 깎아줄 수도 있으며,

서로 때를 밀어줄 수도 있는 법이다. 더 나아가 서로 힘겨울 때 등을 토닥여주고 포용해주며 땀을 닦아줄 수도 있다.

그러니 손으로 절대로 폭력을 써서는 안된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접시를 집어던지고 상대의 목을 조르거나 따귀를 올려서는 안 된다.

이런 습관이 한 번 붙으면 정말 고치기 어렵다. 발을 쓰는 것은 더 나쁘다.

밥상을 뒤엎는 일처럼 인간이 추해보이는 장면도 없을 것이다.

부부 간에 언쟁은 피할 도리가 없는 일이지만, 설사 그렇다 쳐도 입에 담을 수 없는 상욕은 할 짓이 아니다.

 

분이 풀리지 않으면 차라리 집밖으로 나가 한 바퀴 바람을 쏘이고 오는 것이 낫다.

공원 벤치에라도 앉아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 상대의 손을 잡고 "내가 잘못헀어, 미안해"라고 말하면 둘 사이의 문제는 눈 녹듯 사라진다.

우리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살다보면 사랑과 미움의 감정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정신분석이 추구하는 최종 목적도 완벽한 인간, 완벽한 삶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사랑과 미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서서히 자기 스스로를 달래기도 하고 추스르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미로의 과정을 통해 마지막 도달하는 깨달음은 상대에 대한 고마움이다.

 

신기한 마술쇼에 푹 빠진 애들은 마술사의 손을 의심하지 않는다.

부모의 사랑에 푹 빠진 애들 역시 부모의 손을 의심하지 않는다.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혼이 날 때조차도

부모의 손에 들린 회초리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래도 부모님이 변함없이 자신을 사랑해줄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부부도 마찬가지다.

힘겨울 때일수록 손을 내밀어 잡아주고 이끌며 보듬어주는 부부는 진정한 사랑의 마술사들이다.

어쩌다 실수해도 서로를 믿고 그냥 넘어가주는 아량을 보인다.

인간은 진공관 속에 채워진 증류수가 아니다. 온갖 오염된 세상 속을 헤치며 살아가는 생리적 식염수다.

그토록 험한 세파를 헤치고 나가려면 혼자 힘으로는 너무 벅차다.

그래서 서로를 잡아주는 손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고 세수하고 밥을 먹고 옷에 단추를 끼우고 구두끈을 맨 후 대문을 나서며 손을 흔든다.

아침마다 헤어지지만 저녁에는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과 안도감으로 그렇게 부담없이 헤어진다.

그런 애틋한 손길이 과연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마지막 숨이 넘어갈 때 곁에서 손을 잡아주며 두번 다시 잡을 수 없는 그 손을 영원히 놓아야만 한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할까? 그러니 우리의 손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그러니 따스한 마음이 담긴 부드러운 손길에 인색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언젠가는 잡고 싶어도 쓰다듬고 싶어도 더이상 그럴 수 없는 시간이 온다고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가.

그러니 주저하고 망설일 필요가 없다.

매일같이 손을 잡고 실컷 걸어라.

그렇게 손잡고 하염없이 걷다보면 모든 허물도 허세도 만용도, 그리고 온갖 이기심과 자존심도

그야말로 눈앞에서 홀연히 사라지는 법이다.

 

-프로이트를 알면 사랑이보인다-

 

 

 

 

Posted by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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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먹었다고 비타민을 열심히 챙겨먹었더니

안걸리던 몸살 감기가 지독히 걸렸다.

물만 닿아도 "아파" 소리가 절로나니... 이건 뭐....

 

드라마 '연애시대'를 다시보기 결제했다.

다시봐도 이쁘고 풋풋하고...

주옥같은 나래이션에

선선한 바람부는 이 가을에 감성자극 충만한 '연애시대'

 

 

 

어디서부터가 사랑일까.
걱정되고 보고싶은 마음부터가 사랑일까.
잠을 설칠 정도로 생각이 난다면 그건 사랑일까.
어디서부터가 사랑일까.
오랜 시간이 지나 뒤돌아봐도 그래도 가슴이 아프다면 그게 사랑이었을까.
그건 사랑이었을까.

 

지구상에 65억 인구가 있고 신이 아무리 전지전능하다지만
그 많은 사람의 앞날을 미리 알고 정해 놓을리가 없다.
그런 불필요한 수고를 할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그것은 운명이었다고 믿고 싶어질때가 있다.
지난 날을 돌아보며 그것은 운명이지 않았을까 변명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다른 길을 선택할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잊어버린 채,
그 순간의 그 인연의 깊이와 무게가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워지고 감당할 수 없을때,
누군가 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을때,
내가 그 누군가의 인생을 완전히 틀어 놓았다고 밖에 할 수 없을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선명해지고 중요해지는 순간을 돌아보며
차라리 그런 만남은 운명이었다고 눈 돌리고 싶어진다.

 

기억이란 늘 제멋대로다.
지난날의 보잘것 없는 일상까지도 기억이란 필터를 거치고 나면 흐뭇해진다.
기억이란 늘 제멋대로여서 지금의 나를, 미래의 내가 제대로 알리 없다.
먼 훗날 나는 이때의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가끔은 시간이 흐른다는 게 위안이 된다.
누군가의 상처가 쉬이 아물기를 바라면서.
또 가끔 우리는 행복이라는 희귀한 순간을 보내며,
멈추지 않는 시간을 아쉬워 하기도 한다.

 

산다는 건 어차피 외로움을 견디는 것.
누군가가 그랬지..
지구에 4억 인구가 있다면 4억개의 고독이 있다고...
우리는 어설프게 이기적이고 결국 상처를 입혔다.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어떤 시간은 사람을 바꿔 놓는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랑은 시간과 함께 끝나고, 어떤 사랑은 시간이 지나도 드러나지 않는다.
언젠가 변해버릴 사랑이라해도 우리는 또 사랑을 한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것처럼..
시간이라는 덧없음을 견디게 하는 것은 지난날의 기억들.
지금 이 시간도 지나고 나면 기억이 된다.
산다는 것은 기억을 만들어 가는 것.

 

우리는 늘 행복한 기억을 원하지만, 시간은 그 바램을 무시하기도 한다.
일상은 고요한 물과도 같이 지루하지만 작은 파문이라도 일라치면
우리는 일상을 그리워하며 그 변화에 허덕인다.
행운과 불행은 늘 시간 속에 매복하고 있다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달려든다.
우리의 삶은 너무도 약하여서 어느날 문득 장난감처럼 망가지기도 한다.
언젠가는 변하고 언젠가는 끝날지라도
그리하여 돌아보면 허무하다고 생각할지라도
우리는 이 시간을 진심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슬퍼하고, 기뻐하고, 애달아하면서.
무엇보다도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고통으로 채워진 시간도 지나고,
죄책감 없이는 돌아 볼 수 없는 시간도 지나고
희귀한 행복의 시간도 지나고, 기억되지 않는 수많은 시간을 지나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우리는 가끔 싸우기도 하고
가끔은 격렬한 미움을 느끼기도 하고
또 가끔은 지루해하기도 하고
자주 상대를 불쌍히 여기며 살아간다.

 

시간이 또 지나 돌아보면 이때의 나는 나른한 졸음에 겨운 듯
염치없이 행복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가 내 시간의 끝이 아니기에 지금의 우리를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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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말리온 효과를 아십니까  (0) 2012.10.20
Posted by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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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변화시키려면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속담-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타인이지극한 사랑과 정성 덕분에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말은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피그말리온이 자신이 조각한 아름다운 여인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자,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의 사랑에 감동해 그 여인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며, 사랑의 힘은 위대하고 강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움으로 나무라면 그 사람은 변화는 커녕 반발심만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감싸 안으십시오.

그러면 그 사람은 온유하게 변화할 것입니다.

 

-짧은 글 큰 지혜중-

 

 

제 사랑이 부족해서 미처 닿지 못했나봅니다.

그 사람을 진정으로 변화시키지 못했니까요....

다음에 만나게 될 그 누군가에게는 진정으로 나의 사랑이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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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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