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2.12.30 기억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건 잊어버리기

중년의 인생 -프리드리히 횔덜린-

 

노란 배가 열리고

들장미가 만발한

대지는 호수에 매달리네.

우아한 백조들은

입맞춤에 취한 채

신성하게 깨어있는 물속에

머리를 담그네.

허나 겨울이 오면, 내 어디에서

꽃을 찾고, 어디에서

햇빛과 대지의 그늘을 찾을까?

장벽은 말없이 차갑게 서 있고,

바람결에 풍향계는 달그락거리네.

 

 

 

 

기억에는 또 다른 변덕스러운 특성이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기억하기를 바라는가의 문제는 얼마나 많은 기억을 견디는가의 문제와

맥락을 같이 해야 한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망각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억하는 것이 언제나 좋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망각할 줄도 알아야 한다.

잊어버리는 방법을 모르면 자신이 다른 사람의 삶에 얼마나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쳐왔는지 직시하게 된다.

이런 상황은 반대의 상황, 즉 다른 사람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악영향을 미쳐왔는지 깨닫는 것 보다 훨씬 더 견디기 어렵다.

사람들이 기억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으로 인해 통제력과 자유가 생긴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언가를 기억한다면 언젠가는 내가 누구인지를 한층 더 잘 파악하고 통제할 줄 알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순진할 정도로 낙천적인 생각인 것도 맞다.

달리 생각해서 내가 누구인지를 더 잘 파악하게 된다면 오히려 절망감을 느끼는 수순을 밟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저지른 끔찍한 일들을 기억한다고 해서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상처를 주었는지,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납득해버린다면 도리어 그런 행위를 다시 할 가능성이 한층 더 커질지도 모른다.

자신이 지금껏 저지른 일을 정제(精製)하여 인식하다 보면 자기 기만을 고치기 더 힘들어지고

잘못을 자각하기가 한층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지금 하는 행동을 감지하는 정제된 감각이 스스로를 속여 내가 옳은 일을 한다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

핵심을 오해하지 말라.

기억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기억할 때와 망각할 대를 구분하라는 의미이다.

물론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언제나 이리저리 흔들리겠지만 그래도 항상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의 경우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친아버지가 다름 아닌 H란 사람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쁘냐는 질문을 받는다. 어떤 이는 사실을 모르는 게 더 좋았을 것 같은지 물었다.

나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모르던 시적의 기분을 기억해내야 한다. 그래야 사실을 아는 경우와 모르는 경우가

본질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조금이나마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나는 더 이상 사실을 몰랐던 시적의 기분을 기억하지 못하므로 어느 편이 더 좋은지 말하지 못한다.

지금도 진실을 알지 못했다면 기분이 어떠했을지 상상할 수 없다.

지금은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상상력이 모자라거나 없어서그렇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주길.

상상력보다는 기억력의 특성과 관련된 문제이니까. 기억력 자체가 상상력을 제한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정한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쓰면서 기억이라는 함정에 스스로 갇혀버렸다.

망각하기 위해서 이 모든 일을 기억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에서 지난 일들을 지워버리기 위해 글은 쓴다. 하지만 지난 기억들을 잊어야만 한다면

나는 더 이상 지금의 내가 아니리라. 그리하여 나의 기억하기 행위는 동시에 망각하기가 될 것이다.

이는 기억이 망각의 수단이라서가 아니다. 애초에 기억과 망각은 둘이 아닌 하나의 동일한

존재가 될 운명을 타고났다. 완전한 자기 일치와 자기 치환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더이상 지금의 내가 아니기를 바란다는 뜻일까? 아니, 나는 지금 그대로의 나이면서

동시에 지금의 나에게서 자유로워지기를 원하다. 아마도 중년이란 시기가 이런 환상이 펼쳐지는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의 변덕스러운 특성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청춘에 비해 중년에 무언가를 많이

상실한다는 현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청춘이란 과연 무엇이며 중년이 되면 정확히

무엇을 잃어버리는지를 명확하게 밝히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그저

어떤 기분을 잃어버리는지도 모른다. 정확히는 청춘의 기분이다.

그리고 이런 기분은 그 자체로 산만하고 모호하다. 만약 열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는 향수와 상실감의 중심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전체적으로 특성이 없고 전혀

특별하지 않은 존재인 자신의 청춘뿐이라고 대답하리라.

때로 우리는 이러저런 순간이 행복이나 자유라고 정해버리고 이것을 잃어버려서 후회스럽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지난 일을 후회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느꼈던 청춘의 기분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중년에

상실감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말하지 못한다.

같은 의미에서 우리는 음악 한 소절, 시 한 구절에 감동받을때 느끼는 감정을 한가지 방식으로만 받아들인다.

음악이나 시의 어떤 부분이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지 말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물론 단 한 마디의 설명도 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대체적으로 무엇으로 인해

감동을 받는지 제대로 이해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청춘의 기분 역시 아무리 묘사하려고 노력해도 그저 막막할 뿐이다. 어쩌면 삶이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다거나

그것이 망쳐지기 전에 느꼈던 기분이라고 설명할 사람도 있으리라. 이를테면 삶이란 온통 타협과 손상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파악하기 전의 기분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미 말했듯 우리는 이보다 더 정확하게

묘사할 능력이 없으므로 언어 자체가 점점 멀어지는 먹먹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가 바닥이 나거나

적절한 단어를 되찾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것은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의 상태가 감정, 기분 등을

정확히 설명할 말이 없다는 인식만이 아니다. 마치 언어가 세상을 더 이상 파악하지 못하는 듯한,

마치 세상이 언어 위에서 미끄러지거나 다시는 영향을 받지 않을 듯한 느낌이다.

어쩌면 이런 기분의 모호함은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인 장아메리가 제시한 몇 가지 생각으로 인해

다소 희석될 수 있다. 그는 노화에 대한 연구를 담은 저서 '노화에 관하여(On Ageing)'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젊은이들이 허둥지둥 휘말리는 미래란 결코 시간이 아니다.

이것은 세상이며, 보다 정확히 말하면 공간이다.

젊은이들은 앞으로 시간이 창창하다고 제 스스로 말한다. 하지만 이들의 앞날에 정말로 놓인 것은

세상이다. 이들은 세상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세상의 평가가 내려지도록 내버려둔다. 나이든 사람들은

시간이 등 뒤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지만 더 이상 절실하게 살아지지 않는 삶이란 그저 차곡차곡 모인,

살아온, 흘려버린 시간에 불과하다. 우리 앞에 남은 시간이 적다고 생각할수록 우리 내면의 시간은

더욱 많아지는 법이다. (...) 나익 드는 것 또는 단지 늙어간다는 기분이 드는 것조차도 사람의 몸과

영혼에 시간이 있다는 뜻이다. 젊다는 것은 결코 시간이 아닌 인생이자 세계요, 공간인 한 시절속으로

자신의 몸을 디던지는 것이다.

 

나이든 사람들의 현재와 미래는 과거에 집어 삼켜진다. 나이든 사람은 내면에 시간이 있다.

중년이란 압박이 시작되는 시기이며, 중년인 이들은 현재와 미래가 과거의 뒤안길에서

날아온 압박에 옭아매 진다고 느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젊은 시절 즐겨 듣던 음악에 다시 심취하면서

서서히 짙어지는 중년의 향수는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해로울 수밖에 없다. 음악이 잃어버린 세계를

되돌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애초에 있는 그대로 경험했던 세상이다. 그리고 이제는

시간 안에 있는 세상 즉, 인간 내면에 있는 시간 속으로 깊이 스며든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이현상은 심리적인 모순 혹은 정신적인 모순이다.

인간이 공간이나 시간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깨닫는 순간은 세상을 상실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이때 인간은 마치 옴짝달짝할 수없을 정도로 질척한 액체로 점점 채워지는 세상 속에 떠 있는

빈 배와도 같다. 이처럼 중년은 서서히 멈춰가는 기분을 느끼는 시기다.

-크리스토퍼 해밀턴 <중년의 철학>-

 

 

중년이란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중년은 신체의 기능이 정점에 도달하는 동시에 붕괴가 시작되는 시기이다.

보통 이 시기가 되면 지나온 인생의 궤적과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한다.

때로는 시간이 알마 남지 않았다는 조급한 마음 때문에 심각한 불신과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기도 한다.

중년에 느끼게 되는 다양한 감정들, 예를 들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

계획했던 일을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감, 후회, 외로움, 자아 상실감 등은 대부분 어둡고 비관적이다.

그러나 이는 가족을 위해, 부모를 위해 그리고 야망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질 수 있는 값진 감정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크리스토퍼 해밀턴은 자신이 중년이 되었을때 느꼈던 생각과

기분을 철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했다.

그 결과 쇼펜하우어, 니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라킨, 엘리엇에 이르는

위대한 사상가들이 '중년의 위기'에서 빠져나오게 된 순간을 예리하게 찾아냈다.

젊은 날의 허영심과 자기만이 사라진 지금, 중년이 된 당신은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소설가 조지 오웰은 "누구나 중년이 되면 자기에게 어울리는 얼굴을 갖게 된다"라고 말했다.

 

 

"당신 참 열심히 살았군요!"

 

 

 

 

Posted by bluejer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