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후암동, 해방촌에 공장 팀 워크숍을 다녀왔습니다.

7월 초만 해도 본격적으로 무더위가 시작 되기 전이라 걷기에는 무리가 없어서 참말로 다행이었습니다.

평일 낮시간에 공장 의자가 아닌 거리를 걷는 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일인지 힘든지도 모르고 걷고 또 걷고.

 

걷다 들어간 곳이 독립출판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 이었습니다.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 제목이 먼저 눈에 띄었는데

일기 같기도, 고백 같기도, 자기 소개 같기도 한 작가의 글이 궁금해 데려왔습니다.

 

백년 만에 생긴 마감도 없고 여유 있는 오늘은 게을리 했던 책을 읽는 날입니다. 하하

이렇게 게으름을 만회하나요? 죄책감 좀 덜 느끼려고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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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제가 말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 재필 씨 처럼 말이죠.

저도 말 하는 것 보단 경청하는 걸 더 즐기는 편이긴 하지만 분위기가 어색하면 제일 말이 많은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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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저 대신해 말해주고 있군요.^^ 

어쨌든 나같이 심심하게 생겨먹은 사람도 술자리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 맛있는 술 너희들끼리만 마시지 말고 불러달라는 이야기랍니다.

 

읽다 보니 저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반가워서 오랜 만에 주절 주절 했습니다요.^^

저 때문에 더 더워지신 건 아닌지....

 

Posted by 제리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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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새들을 날려 보냈던 기억의 가지들을 위하여

어느 계절까지 힘겹게 손을 들고 있는가.

-기형도 <조치원>-

 

사랑하는 자는 하나의 장소를 만나고, 다른 계절로 떠나야 한다.

사람의 계절은 보다 더 짧거나 더 강렬하거나 더 느릴 수도 있다.

우리가 같은 문장에 머무를 수 없는 것처럼, 생을 통해 하나의 계절을 지킬 수는 없다.

계절이란 기억과 시간에 대한 단념의 이름이다.

 

 

봄은 단념하기 좋은 계절이다.

아름답고 불가능한 계절들.

 

계절들이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리듬일 뿐이다.

그 몇 개의 계절들은 돌이킬 수도 돌이킬 필요도 없었다.

지난 계절의 지독했던 기침을 어느 날 문득 삼켜버린 것처럼, 그렇게 그 세월을 삼켜버리면 되었다.

익숙한 거리의 상점과 밥집들이 잊히는 것처럼, 그렇게 망각의 힘을 믿게 될 것이다.

계절에는 미래가 없다.

한번 가지에서 날아간 새들이 어디로 갔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저녁의 새들이 갑자기 침묵하는 순간처럼,

그 계절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서로 엇갈리는 긴 시간보다 분명한 것은 그 기억조차 흐려지는 날이 온다는 것.

언어만이 그 계절들을 봉인한다.

어떤 사랑의 이야기는 망각의 힘으로, 망각하려는 힘으로, 다시 쓰인다.

기억보다 더 오래된 세월을 향해.

-이광호 <사랑의 미래>-

 

어느 한 구절의 우연한 발견으로 주문했던 책.

그렇게 봄과 함께 찾아온 메마른 감성을 촉촉히 젹셔주는 글을 만난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봄은 단념하기 좋은 계절이다. 기억보다 더 오래된 세월을 향하기위한...

한강을 가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음악이 있어서 좋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이제 책을 들고 종종 야외로 나가야겠다.

 

 

 

 

 

 


 

 

Posted by 제리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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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들은 국내 영화만 상영하기 바쁘고

수입 영화는 시간대를 참 이상하게 잡아놓네요.

오늘이 아니면 영화를 놓칠까 싶어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사이드 이펙트'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우울증 처방된 약의 부작용에 대한 스토리로 시작합니다.

여기저기 리뷰를 보니 처음에는 지루할 지 모른다 써있었지만

저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몰입해서 재미있게 본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약에 대한 부작용이 아닌 인간의 욕망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이야기하고 있죠.

그 욕망이 남편을 아무렇지 않게 살인까지 이어지고

억울하게 벼랑끝에 내몰린 정신과 의사가 빠른 전개로 진실을 쫓아 가는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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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롯데시네마에서 이 영화 상영시간을 오전대와, 점심시간 아니면 자정이 거의 가까운 시간대에 잡은 것을 보면

대중들에게 그리 임팩트를 줄 수 없다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너무 흥행에 목숨 건 영화보단 오랜동안 여운과 메시지를 주는 영화가 저에게는 더 매력이라

다른 분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습니다.

 

 

 

 

 

Posted by 제리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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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정은 곧은 직선으로 뻗어 있고

어떤 여정은 빙빙 에두르는 길이다.

어떤 여행은 영웅적이고

어떤 여행은 두려움과 혼란투성이다.

하지만 모든 여행은

정직하게만 따르면

정확한 목적지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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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저 강물이 얼어붙는 날

스스로에게 물어 보기를

내가 어떤 실수를 저질렀는지

내가 한 일들이 곧 내 인생인지


사람들이 천천히 머리속에 떠오르네

어떤 이는 도움을

어떤 이는 상처를 주려 했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기를

그들의 지독한 사랑이나 미움이

어떻게 달랐었는지


나 그대의 말을 들으리

그대와 나 돌아서서

저 말없는 강물을 바라보며 기다릴 수 있으니

우리는 알고 있네

저 강물 속에, 흐르는 물살이 숨겨져 있음을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는 것처럼

침묵을 안고 수 마일을 흘러왔고 흘러갈 것을

저 강물의 말이 곧 나의 말임을

-윌리엄 스태포드 <스스로에게 물어 보기를>-



'최고의 진리와 가치가 당신의 삶을 이끌도록 하라.

매사에 최고의 진리와 가치를 기준으로 행동하라.'

당시 바로 그런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그 말의 의미를 더욱 구체화할 수 있었다.

나에게 "네 인생의 목소리를 들어 보아라"라는 말은 바로 마틴 루터 킹2세,

로자 파크스, 마하트마 간디, 도로시 데이처럼 숭고한 목표를 가진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나는 내가 찾을 수 있는 최고의 이상을 늘어놓고는 그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대부분 어처구니없는 결말이었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언제나 그 결과는 비현실적이었고 빈정한 나 자신을 왜곡하는 것이었다.

원인은 나의 내면에서 밖으로 뻗어나간 삶이 아니라 바깥세계에서 안으로 밀려들어온 삶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마음에 귀기울이기보다 영웅들의 인생을 흉내내는 '고상한' 길을 찾았던 것이다.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때 <파커J. 파머>-



"Let your life speak."

내게도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이기도 하다.

앞으로 인생이 나를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에 귀 기울이기.

 



 


Posted by 제리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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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일때 우리의 뇌는 양육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발달했다. 양육자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거나

전달한 감정과 태도,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뇌의 성장에 반영된다. 원만한 양육환경 속에서

자랐다면, 부모님이나 양육자들이 우리의 기분이나 정서상태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보살펴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울고 웃으며 느끼는 것에 대해 적절히 답을 하고 반응해주었을 것이다.

따라서 두 살 정도가 되면 사람의 뇌는 이미 자기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패턴을 갖게 마련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좌뇌 역시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발육된다.

이런 이원적인 발달 덕분에 양쪽 뇌가 어느 정도 통합될 수 있는 것이고, 이때부터 우리는

비로소 좌뇌를 활용하여 우뇌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양육자들이 고의로, 혹은 무심코 아기의 기분을 무시하거나 그 기분에 대해

벌을 준다면 어떻게 될까? 그 시기에는 감정이 일어날 때 그 감정을 처리하는 능력이나 언어로

이해하는 능력을 배워야 하는데, 결정적인 시기를 놓쳐 제대로 연습하지 못하면 그런 능력이

아무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어른이 된 이후에도 문제로 남을 수 있다.

그래서 유아기에 양육자들과의 관계가 정상적이지 못했거나, 유아기 이후에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어 안정상태가 깨진다면, 장차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될 확률이 커진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어떻게 이미 지나간

유아기를 되돌려 양육자와 더 행복한 시간을 갖고, 이미 겪어버린 트라우마를 피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지 않다도 방법은 있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지만, 경로를 변경하는

일은 가능하다. 심리치료사들은 '어떤 사람이나 문화의 특징들을 자신의 정신 속으로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두고 '내사(introjection)'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양육의 경험을

내사하여 유아기에 양육자들이 남긴 영향을 계속 떠안고 살아가는데, 그럼으로써 감정, 생각, 반응,

행동의 패턴들이 심화되고 고착된다. 그렇다고 이것을 무조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부모님이 좋은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 후에 우울증에 빠지거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면, 좀 더 온전한 정신을 갖고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그 패턴을 변경해야 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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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미 익숙해진 생각들의 패턴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불행히도 절대적이고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만병통치약 같은 것은 없다. 옴짝달짝할 수 없는 꽉 막힌 삶에 점점

깊이 박혀버리거나, 반대로 더 압도적이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진다면(혹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경험하는 경우도 있다), 약물치료든 새로운 행동양식이로든 무엇이라도 해서 더 이상의

추락을 막아야 할 뿐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새로운 행동양식'이라는 것은, 인생의 초점을 새롭게

맞추는 것일 수도 있고, 새로운 생각들이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무언가'로부터 도움을 얻는

일일 수도 있다(굳이 내가 이렇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우언가'라는 애매한 표현을 쓴 이유는,

어떤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심리치료 케이스들을 살펴보다 보면, 예외 없이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자기관찰(self-observation), 타인과 관계 맺기, 유익한 스트레스, 개인적인 내러티브(narrative)에 대해서

말이다. 이 네가지는 심리치료와 관계없이 우리의 삶에 활용해보면 좋은 것들이기도 하다.

온전한 정신을 지키고, 성장과 발전에 꼭 필요한 유연성을 갖도록 도와주는 이 네 가지 영역이,

지금부터 우리가 함께 이야기할 이 책의 주제다.

 

1. 자기관찰

소크라테스는 "반성하지 앟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 좀 극단적인 말이긴 하지만,

온전하고 지혜로운 정신을 갖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심판관 같은 태도를 버리고 먼저

자기를 제대로 관찰하는 능력을 꾸준히 키워야 한다. 내 경험에 따르면 자기관찰 능력은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기관찰 훈련을 하다 보면, 가정과 느낌, 생각이 일어날 때, 그리고 그 감정, 느낌,

생각이 기분과 행동을 결정할 때, 그것을 경험하고 인지하고 평가하기 위해 제3자의 시선을

가지게 된다. 이런 능력을 키우면 어려운 일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로운 태도를

가질수 있고 사사건건 판결을 내리려는 태도도 없앨 수 있다. 또한 스스로의 행동방식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생길 뿐만 아니라, 감정과 논리에 귀 기울이고 그 두 가지를 종합할 줄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온전한 정신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기관찰 능력을 최대한 키워 궁극적으로

자기인식(self-awareness) 능력을 높여야만 한다. 아마도 이것은 누구에게나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안는 숙제일 것이다.

 

2. 타인과 관계 맺기

누구에게나 의지를 북돋아주고 격려해주는 안전하고 믿음직한 인간관계가 필요하다.

물론 여기에는 연인도 포함된다. 좀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로맨스가 반드시

행복의 필수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성장을 촉진시켜주는 관계는 꼭 필요하다.

그 대상이 심리치료사이건, 혹은 선생님이나 연인, 친구, 자식 등 누구이건 간에,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 뿐 아니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고, 심지어 슬쩍슬쩍 자극을 주기도 하는

그런 관계가 필요하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만 온전히 존재하며, 지속되는 일련의 관계들을

통해 발전하고 변화한다.

 

3. 유익한 스트레스

올바른 스트레스는 긍정적인 자극을 준다. 그렇다면 과연 올바른 스트레스란 무엇일까?

새로운 것들을 배우면서 창의성이 발휘되도록 자극을 주되, 공황 상태에 빠지거나 일상이

뒤집어질 만큼 위압적이지는 않은 것, 그게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유익한 스트레스다.

또한 유익한 스트레스는 새로운 신경연결을 유도하는데, 이것은 인격의 발달과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4. 개인적인 내러티브

내러티브란, 말 그대로 서사, 서술, 줄거리, 스토리텔링 등의 여러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잘 안다는 것은, 필요할 때 그 이야기를 편집하고 바꿀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의 자아 중 상당 부분이 언어능력을 습득하기 전에

형성되는 탓에, 우리를 이끄는 신념이나 믿음들 중에는 자신조차 모르게 감추어진 것들도 있다.

한편, 우리는 "나는 ...한 사람이다."라거나 "그렇게 ㅎ는 것은 나답지 않아. 난 ...한 사람이 아니니까."

라는 식의 믿음들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바로 그런 자신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본다면, 스스로는 물론이고 타인들과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더 새롭고 더 유연하게

정의할 수 있게 된다.

 

비록 각자가 처한 환경이나 삶에서 벌어지는 사건, 그리고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방법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네 가지 영역은 누구에게나 온전한 정신의 토대가 된다.

 

- 인생학교 <정신>, 필립파 페리 -

 

 

 

Posted by 제리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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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혼란상태(chaos)에 빠져 휘청거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계속되는 삶의 위기들 때문에

정신이 없는 부류다. 두 번째 부류는 바퀴자국 같은 과거의 상처에 꽁꽁 묶인 채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쩔쩔매는 사람들이다. 물론 양쪽 모두에 속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독특한 유전자의 조합을 가지고 태어났고, 각기 다른 성장기를 겪었다.

그런 까닭에 좀 더 용감해지고 개방적인 성격이 되어야 할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자기억제라는 것을(늦었지만 이제라도) 새로 배워야 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타인을

신뢰하는 법을 좀 더 연습해야 할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나 무턱대고 믿어버리는 탓에 분별력을

좀 더 키워야 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또 다른 사람에게는

불행의 원천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유용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해로울 수도 있다.

우리의 뇌가 어떤 과정을 거쳐 발달했는지, 정신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 작동되는 원리는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생각의 방식과 감정변화의 패턴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삶의 방식까지도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뇌에 대해

이해하고 생각해보는 훈련 덕분에, 나뿐만 아니라 내 환자들은 스스로의 삶을 더 능숙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을 '두 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戰車)'에 비유했다. 전차의 기수가 이성(Reason)이라면

두 마리의 말은 각각 기개(spirit)와 욕망(Appetite)이라고 했다. 정신(mind)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와 비슷한 비유를 해왔다. 나 또한 그런 식의 접근법을 활용해, 현대의 신경과학이 밝혀낸 것들과

그 밖의 여러 심리치료적 접근법을 접목시켜보았다.

 

 


그렇다면 먼저 가장 안쪽에 있는 '뇌간'부터 살펴보자. 종종 '파충류의 뇌'로도 불리는 곳이다.

뇌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작동하며 반사작요와 심장근 같은 불수의근(不隨意筋)의 움직임을 맡고 있다.

또한 생명중추의 기능을 담당해 위험한 순간에 우리의 목숨을 구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손가락으로 우리의 눈을 찌르려고 하는 순간에도, 뇌간은 우리가 눈을 감게 만든다.

한마디로 뇌간은 소도쿠 같은 것을 풀 때는 도움을 주지 않지만,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단계에서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준다.

뇌간의 바깥인 중뇌에는 '포유류의 뇌'라고 불리는 변연계가 있다. '감정의 뇌'라고도 불리며,

인간의 감정과 인식, 기분 등을 담당한다. 인간을 비롯하여 모드 포유류들은 흥분하면 으르렁거리고,

공포를 느낄 때는 움츠리며, 애정을 표현하려고 꼬리를 흔들기도 하는데, 이 모든 감정적인 행동들이

바로 중뇌의 발달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진화한 것이 전뇌다. 전뇌는 '인간의 뇌'라고 불리며 이성을 담당한다. 학습, 기억력,

지력을 담당하고, 추론, 의사결정, 언어이해, 자발적 움직임 등의 지적 사고를 조절한다.

한편 우리의 대뇌는 자뇌와 우뇌로 나뉘어져 있고, 가운데에 위치한 뇌량이 다리 역할을 하며

자뇌와 우뇌를 이어준다. 흔히 알려진 바와 같이 좌뇌는 논리적이고, 순차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

말하기, 쓰기, 독서, 듣기(청각)를 관장하며, 언어, 논리, 추론 같은 조직적인 활동을 담당한다.

반면 우뇌는 불규칙적이고, 바조직적이며, 직관적이고 전체론적이다. 감정과 촉각으로 인식하고,

공간감각, 형태의 인식, 음악, 예술, 색감, 창의력, 시각화와 같은 비언어직인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우뇌와 좌뇌는 평생에 걸쳐 계속 발전하지만, 태어나서 다섯 살이 될 때까지 대부분의 발달이

이루어진다고 보면 된다. 각각의 뇌세포들은 혼자서는 아무일도 할 수 없다.

뇌세포들이 제기능을 수행하려면 다른 뇌세포들과 서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우리의 뇌는

일련의 발달과정을 통해 각 뇌세포들을 연결하는 신경경로(neural pathway)를 경로한다.

그런데 이런 뇌세포의 연결은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우리의

뇌 발달은 유전적인 요인보다는 유년기에 형성되는 인간관계와 더 깊은 관련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타고난 본성보다는 후천적 양육환경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이 사람과 저 사람이 다른 이유는, 대체로 아주 어린 시절에 겪은 일상적인 경험들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상 우리의 경험이 뇌의 문제를 결정짓는 셈이다.

 

생후 2년 동안 우뇌는 아주 활발하게 움직이는 반면, 좌뇌는 잠잠한 상태에서 그다지 활동성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뒤로 몇년 사이에 발달의 양상이 뒤바뀌어, 우뇌의 발달은 둔해지고

좌뇌는 괄목할 만한 활동의 시기에 돌입한다. 우뇌에 깔리게 되는 신경경로는 유아기에 만들어지는데,

그 토대는 타인들과의 유대나 형성이나 결합의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타인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스스로에 대해 전반적으로 얼마나 편안하게 느껴지는지,

기분이 상한 후에 얼마나 빠르게(혹은 더디게) 감정을 스스로 추스를 수 있는지에 좌우된다는 말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뇌는 주로 감정과 직관, 비언어적인 부분을 담당한다.

타인과의 공감, 조화, 관계에 관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뇌는 좌뇌보다 먼저 발달할 뿐만 아니라

이 시기 내내 지배적인 위치에 있다. 그래서 힐끗 쳐다보거나 냄새를 한 번 맡는 것만으로도

우뇌는 어떠한 상황이든 판단하고 파악한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 장님이 된

글로스터 백작이 주위를 둘러보며 "나는 느낌으로 본다."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반면 좌뇌는 주로 언어, 논리, 추론을 담당한다. 우리는 경험을 언어로 처리하기 위해, 혹은 생각과

아이디어를 우리 자신과 타인에게 분명히 표현하기 위해, 또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좌뇌를 활용한다.

논리와 증거를 증시하는 과학은 자뇌 덕분에 발전해왔고, 분류학, 철학, 언어학 같은 분류 및

정리 부문의 학문들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태어나서 첫 2년 동안에는 좌뇌의 발달이

우뇌에 비해 현저히 더디다. 언어와 논리력을 갖춘 자뇌가 영향력을 발휘하기 전에 먼저 우뇌가

활발히 발달됨으로써 성격의 토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우뇌가 여전히 우위를 갖는

경향에 대한 이유일 수도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간혹 분별 있는 행동을 해야만 하는 이성적인 이유가 분명히 있는 데도, 나도 모르게 엉뚱하게 튀어나와

곤란했던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뇌의 분별 있는 부분(좌뇌)이 언어기능을 담당하고 있는데도,

종종 다른 부분(우뇌)이 그 언어기능을 조종하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내가 방금 무슨 헛소리를 한 거지? 하는 경우). 이것이 바로 우뇌의 우위가 드러난 경우다.

 

- 인생학교 <정신>, 필립파 페리 -

 

 

 


 

Posted by 제리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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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 iPhone | 2013:01:05 03:31:33

 

"들으신 것처럼 참 슬픈 이야기예요. 그리고 아저씨가 절 도와주실 것도 별로 없고요."

어린왕자가 매듭짓듯 말했어. 나는 이미 어린왕자의 모험담에 푹 빠져서 이야기가 끝날 때쯤에는

자동차가 저절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니까.

"그래, 슬픈 이야기구나. 하지만 내가 널 도울 수 없을 거라는 말은 틀린 것 같은데?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어린왕자는 얼른 방어적 태세를 취하며 말했어.

"정말 모르시겠어요? 별들을 웃게 해 주던 친구를 잃어버렸다고요. 오후마다 함께 지낸 양,

즐거움과 아름다움으로 제게 힘을 불어넣어 주던 꽃도 잃었고요. 저를 지켜 주고 조언도 해 주던

잡초도 다신 볼 수 없단 말이에요. 게다가 화산 폭발 때문에 제 작은 행성도 틀림없이 함께 터지게

될 거라는 걸 정말 모르시겠어요? 그런데도 정말 아저씨가 절 도와줄 수 있다고요?"

어린 왕자는 화가 난 듯 따져 물었어. 갑자기 흥분해서 그런지 양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서 말이야.

"그렇다니까." 나도 확신에 차서 대답했어.

"난 네가 잃어버린 모든 것, 아니 그 이상을 네가 찾을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어. 어찌 되었든

네가 잃어버린 것은 바로 삶의 기쁨과 행복 그 자체가 아니겠니. 네가 허락만 해 준다면 도와줄게.

하지만 너도 기꺼이 너 자신을 돕겠다고 결심해야 해."

어린왕자는 의심스러운 눈길로 날 바라보았어. 하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더라고. 그래서 나는 이야기를 계속했어.

 

"이게 네가 살아오면서 처음 겪게 된 어려움이구나. 그렇지만 이건 네가 해결해야 해. 분명한 건 설령

그것 때문에 좌절하더라도, 그것으로 세상이 끝나지는 않는다는 거야. 네가 이 상황을 극복하고 싶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되거든. 그런데 그러려면 너의 영적인 본성과 동물적 본능 두 가지가 다 필요해."

"저 자신이 그걸 느끼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아저씨는 제가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충분히 갖고

있다고 확신하세요?"

"내가 보는 눈이 좋거든."

드디어 어린왕자가 내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해서 마음이 뿌듯해졌어.

"내가 왜 그렇게 확신하느냐고? 우선 너는 네 작은 별에서 분명히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데도 그걸 포기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지구로 올 만큼 대단한 용기를 지녔잖니. 다음으로 힘이 다 없어졌다고 느꼈을 때도

너는 거기에 힘겹게 버티고 누워 있었어. 거긴 누군가가 널 도와줄지도 모를 곳이잖아. 만약 그때 네가

고속도로 한복판이나 벌판 한가운데에 누워 있었다면 아마도 지금쯤 넌 죽었을 거야. 마지막으로 우리가

처음 나눈 이야기는 문제와 어려움에 관한 것이었잖니. 그건 네가 처한 막다른 상황을 이겨 내기 위해

유용한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한다는 뜻이거든."

내 말이 맞는다는 듯 어린왕자가 수긍하는 눈빛을 보였어.

"아까 우리가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잖니. 네가 간절히 원한다면,

지금 네가 처한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해. 네가 그걸 이겨 낼 수 있다는 걸 알기때문에

내가 어려움에 대해 말했던 거야. 비록 네가 그것을 확신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바로 너 자신 안에 있어."

그랬더니 어린왕자가 곧바로 되받아치며 말했어.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죠? 내 친구가 날 속였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제 삶은 평화롭고

행복했단 말이에요. 바로 그 사실이 제 모든 불행의 원인이란 말이에요."

어린왕자는 화가 난 것 같았어.

"너는 문제를 밖에서만 찾으면서 지금 네가 처한 상황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잖니. 그건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야."

나는 나직하게 말했어. 반면 나를 보는 어린왕자의 눈은 마치 내 눈을 태울 듯이 이글거렸어. 뭔가

설명이 더 필요한 것 같았지. 그래서 어린왕자가 말을 하기 전에 내가 얼른 말을 이었어.

 

"속임수라는 것도 알고 보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었거나 혹은 적어도 네가 상상하는 그런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 거야. 하지만 일단 잠깐이나마 네 친구가 정말 널 속였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네가 화를 낼 만도 하고 환멸을 느낄 수도 있고 심지어 슬퍼하는 것도 당연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네가 꽃의 아름다움과 저녁 노을이 들려주는 시나 별들의 음악 소리를 더 이상

즐거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돼."

나는 어린왕자가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걸 보고 좀 더 나긋나긋하게 계속해서 말했어.

"네 말처럼 그 친구는 속임수로 네 삶을 뒤흔들어 놓았어. 인생의 기반이라는 게 원래 그렇게

허약하기 짝이 없거든. 아마도 네 양도 더 이상 네게 위안이 되지 못했고, 꽃은 자기중심적이었으니까

그것도 네가 원하는 것을 채워 주지 못했을 거야. 늘상하는 허드렛일들도 네 영혼을 채우지 못했던 것이

뻔하고, 게다가 너는 잠시 도피처가 될 수 있는 취미도 없잖니. 아마도 너의 현실은 활기가  없어지고

그거 매일매일 널 묵묵히 버틸 수 있게 만든 것이라곤 이제는 없는 친구에 대한 추억뿐이겠지.

그러니 널 지탱해 주던 단 하나마저 무너져 버리자 모든 게 헛된 것이 되고 말았던 거야.

사실 너의 세상이라는 것도 이미 텅 비어 있던 것이 아닐까. 네가 떠나기 전에 이미 시들어 버린 꽃처럼

말이야. 네가 말하는 그 친구의 속임수라는 게 유일한 실마리였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지금 네가 처한

상황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 이런 점을 일찍 받아들일수록 넌 더 빨리 성장할 거야."

 

나는 어린왕자의 내면에서 여전히 모든 것을 정당화시키려는 마음과 이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갈등을 일으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어. 그래서 얼른 내가 외부의 관찰자로서 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어.

"그렇지만, 네가 너 자신에 대해 확신하고 너의 감정을 더 믿었다면, 잡초가 네 마음을 비집고 들어와

그렇게 쉽게 틈새를 만들어서 네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을 거야."

어린왕자가 내 말에 반박하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그러니까 잡초를 옹호라려고 할 때

나는 얼른 숨을 몰아쉬고 다시 말했어.

"왜 우리는 흔히 꿈을 주는 사람보다 그것을 깨는 사람의 말을 더 신뢰할까?"

내 물음에 어린왕자가 순간적으로 당혹스러워했지만,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 계속해서 말했어.

"도와주려는 거라고 변명하면서 네 꿈을 산산조각 내는 그런 사람들을 믿으면 안돼!

왜냐하면 대개 그런 사람들은 말만 하지 실제 아무것도 해 주는 게 없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문득 불길한 소식을 들고 온 사람을 죽이는 고대의 관습 가운데 뭔가 괜찮은

지혜가 없는지 궁금해졌어. 여러 해 동안 내가 겪어 온 것들을 생각해 보면 소식이라는 게

대부분의 경우 틀렸거나 의도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말이야. 그것도 아니면 사실 아무것도

이루어진 게 없었으니까. 만약 나였다면 되도록 나중에 듣고 싶어 했을 거야.

그렇게 내 이야기는 계속되었어.

"조만간, 모든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니게 돼. 인생이라는 꿈에서도 죽을 때가 되면 깨잖아.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있겠고. 네 친구는 네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양을 주었고

그건 바로 네가 꿈속에서 그토록 바라던 양이었을 거야, 네가 보살펴 줄 수 있는 유일한

양이자 너의 작은 별에서 너와 함께 지낼 수 있는 그런 양이라는 말이야. 저녁 노을이 드리울 때

네 친구와 함께 즐겁지 않았니? 밤에는 네가 그 시간에 외로움을 느끼고 싶지 않은 것처럼

혹시 네 양이 외로워하지 않을까 싶어서 가 보기도 했겠지? 네가 그 양을 길들였으니

그건 바로 네 것이고, 마찬가지로 너 역시 양의 것이 되었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어?

분명히 네가 사진에서 본 양보다는 훨씬 생생하게 살아 있는 양이었을 거야. 왜냐하면

사진 속의 양은 그냥 한 마리의 양일 뿐이지만, 다른 양은 바로 너만의 양이니까."

 

그때 문득 내가 여행할 때 사랑하는 가족들의 사진을 챙겨 다니지 않는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어. 가슴속에 담긴 가족의 모습이 사진보다 훨씬 생생하니까.

천천히 차를 몰다가 조용히 길가에 차를 세웠어. 마치 이제는 마음 놓고 울고 싶다는 듯,

어린왕자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거든.

"고맙습니다"

어린왕자가 그렇게 말하면서 날 껴안았어. 그러고는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대더니

이내 천천히 잠들어 버렸어.

 

- 어린왕자 두 번째 이야기-

 

 

*'어린왕자 두 번째 이야기' 역시 아껴 읽고 싶은 책 중의 하나다.

 

 

 

 

 

 

Posted by 제리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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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인생 -프리드리히 횔덜린-

 

노란 배가 열리고

들장미가 만발한

대지는 호수에 매달리네.

우아한 백조들은

입맞춤에 취한 채

신성하게 깨어있는 물속에

머리를 담그네.

허나 겨울이 오면, 내 어디에서

꽃을 찾고, 어디에서

햇빛과 대지의 그늘을 찾을까?

장벽은 말없이 차갑게 서 있고,

바람결에 풍향계는 달그락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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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는 또 다른 변덕스러운 특성이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기억하기를 바라는가의 문제는 얼마나 많은 기억을 견디는가의 문제와

맥락을 같이 해야 한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망각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억하는 것이 언제나 좋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망각할 줄도 알아야 한다.

잊어버리는 방법을 모르면 자신이 다른 사람의 삶에 얼마나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쳐왔는지 직시하게 된다.

이런 상황은 반대의 상황, 즉 다른 사람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악영향을 미쳐왔는지 깨닫는 것 보다 훨씬 더 견디기 어렵다.

사람들이 기억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으로 인해 통제력과 자유가 생긴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언가를 기억한다면 언젠가는 내가 누구인지를 한층 더 잘 파악하고 통제할 줄 알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순진할 정도로 낙천적인 생각인 것도 맞다.

달리 생각해서 내가 누구인지를 더 잘 파악하게 된다면 오히려 절망감을 느끼는 수순을 밟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저지른 끔찍한 일들을 기억한다고 해서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상처를 주었는지,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납득해버린다면 도리어 그런 행위를 다시 할 가능성이 한층 더 커질지도 모른다.

자신이 지금껏 저지른 일을 정제(精製)하여 인식하다 보면 자기 기만을 고치기 더 힘들어지고

잘못을 자각하기가 한층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지금 하는 행동을 감지하는 정제된 감각이 스스로를 속여 내가 옳은 일을 한다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

핵심을 오해하지 말라.

기억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기억할 때와 망각할 대를 구분하라는 의미이다.

물론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언제나 이리저리 흔들리겠지만 그래도 항상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의 경우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친아버지가 다름 아닌 H란 사람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쁘냐는 질문을 받는다. 어떤 이는 사실을 모르는 게 더 좋았을 것 같은지 물었다.

나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모르던 시적의 기분을 기억해내야 한다. 그래야 사실을 아는 경우와 모르는 경우가

본질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조금이나마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나는 더 이상 사실을 몰랐던 시적의 기분을 기억하지 못하므로 어느 편이 더 좋은지 말하지 못한다.

지금도 진실을 알지 못했다면 기분이 어떠했을지 상상할 수 없다.

지금은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상상력이 모자라거나 없어서그렇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주길.

상상력보다는 기억력의 특성과 관련된 문제이니까. 기억력 자체가 상상력을 제한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정한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쓰면서 기억이라는 함정에 스스로 갇혀버렸다.

망각하기 위해서 이 모든 일을 기억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에서 지난 일들을 지워버리기 위해 글은 쓴다. 하지만 지난 기억들을 잊어야만 한다면

나는 더 이상 지금의 내가 아니리라. 그리하여 나의 기억하기 행위는 동시에 망각하기가 될 것이다.

이는 기억이 망각의 수단이라서가 아니다. 애초에 기억과 망각은 둘이 아닌 하나의 동일한

존재가 될 운명을 타고났다. 완전한 자기 일치와 자기 치환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더이상 지금의 내가 아니기를 바란다는 뜻일까? 아니, 나는 지금 그대로의 나이면서

동시에 지금의 나에게서 자유로워지기를 원하다. 아마도 중년이란 시기가 이런 환상이 펼쳐지는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의 변덕스러운 특성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청춘에 비해 중년에 무언가를 많이

상실한다는 현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청춘이란 과연 무엇이며 중년이 되면 정확히

무엇을 잃어버리는지를 명확하게 밝히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그저

어떤 기분을 잃어버리는지도 모른다. 정확히는 청춘의 기분이다.

그리고 이런 기분은 그 자체로 산만하고 모호하다. 만약 열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는 향수와 상실감의 중심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전체적으로 특성이 없고 전혀

특별하지 않은 존재인 자신의 청춘뿐이라고 대답하리라.

때로 우리는 이러저런 순간이 행복이나 자유라고 정해버리고 이것을 잃어버려서 후회스럽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지난 일을 후회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느꼈던 청춘의 기분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중년에

상실감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말하지 못한다.

같은 의미에서 우리는 음악 한 소절, 시 한 구절에 감동받을때 느끼는 감정을 한가지 방식으로만 받아들인다.

음악이나 시의 어떤 부분이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지 말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물론 단 한 마디의 설명도 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대체적으로 무엇으로 인해

감동을 받는지 제대로 이해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청춘의 기분 역시 아무리 묘사하려고 노력해도 그저 막막할 뿐이다. 어쩌면 삶이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다거나

그것이 망쳐지기 전에 느꼈던 기분이라고 설명할 사람도 있으리라. 이를테면 삶이란 온통 타협과 손상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파악하기 전의 기분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미 말했듯 우리는 이보다 더 정확하게

묘사할 능력이 없으므로 언어 자체가 점점 멀어지는 먹먹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가 바닥이 나거나

적절한 단어를 되찾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것은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의 상태가 감정, 기분 등을

정확히 설명할 말이 없다는 인식만이 아니다. 마치 언어가 세상을 더 이상 파악하지 못하는 듯한,

마치 세상이 언어 위에서 미끄러지거나 다시는 영향을 받지 않을 듯한 느낌이다.

어쩌면 이런 기분의 모호함은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인 장아메리가 제시한 몇 가지 생각으로 인해

다소 희석될 수 있다. 그는 노화에 대한 연구를 담은 저서 '노화에 관하여(On Ageing)'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젊은이들이 허둥지둥 휘말리는 미래란 결코 시간이 아니다.

이것은 세상이며, 보다 정확히 말하면 공간이다.

젊은이들은 앞으로 시간이 창창하다고 제 스스로 말한다. 하지만 이들의 앞날에 정말로 놓인 것은

세상이다. 이들은 세상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세상의 평가가 내려지도록 내버려둔다. 나이든 사람들은

시간이 등 뒤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지만 더 이상 절실하게 살아지지 않는 삶이란 그저 차곡차곡 모인,

살아온, 흘려버린 시간에 불과하다. 우리 앞에 남은 시간이 적다고 생각할수록 우리 내면의 시간은

더욱 많아지는 법이다. (...) 나익 드는 것 또는 단지 늙어간다는 기분이 드는 것조차도 사람의 몸과

영혼에 시간이 있다는 뜻이다. 젊다는 것은 결코 시간이 아닌 인생이자 세계요, 공간인 한 시절속으로

자신의 몸을 디던지는 것이다.

 

나이든 사람들의 현재와 미래는 과거에 집어 삼켜진다. 나이든 사람은 내면에 시간이 있다.

중년이란 압박이 시작되는 시기이며, 중년인 이들은 현재와 미래가 과거의 뒤안길에서

날아온 압박에 옭아매 진다고 느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젊은 시절 즐겨 듣던 음악에 다시 심취하면서

서서히 짙어지는 중년의 향수는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해로울 수밖에 없다. 음악이 잃어버린 세계를

되돌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애초에 있는 그대로 경험했던 세상이다. 그리고 이제는

시간 안에 있는 세상 즉, 인간 내면에 있는 시간 속으로 깊이 스며든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이현상은 심리적인 모순 혹은 정신적인 모순이다.

인간이 공간이나 시간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깨닫는 순간은 세상을 상실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이때 인간은 마치 옴짝달짝할 수없을 정도로 질척한 액체로 점점 채워지는 세상 속에 떠 있는

빈 배와도 같다. 이처럼 중년은 서서히 멈춰가는 기분을 느끼는 시기다.

-크리스토퍼 해밀턴 <중년의 철학>-

 

 

중년이란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중년은 신체의 기능이 정점에 도달하는 동시에 붕괴가 시작되는 시기이다.

보통 이 시기가 되면 지나온 인생의 궤적과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한다.

때로는 시간이 알마 남지 않았다는 조급한 마음 때문에 심각한 불신과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기도 한다.

중년에 느끼게 되는 다양한 감정들, 예를 들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

계획했던 일을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감, 후회, 외로움, 자아 상실감 등은 대부분 어둡고 비관적이다.

그러나 이는 가족을 위해, 부모를 위해 그리고 야망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질 수 있는 값진 감정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크리스토퍼 해밀턴은 자신이 중년이 되었을때 느꼈던 생각과

기분을 철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했다.

그 결과 쇼펜하우어, 니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라킨, 엘리엇에 이르는

위대한 사상가들이 '중년의 위기'에서 빠져나오게 된 순간을 예리하게 찾아냈다.

젊은 날의 허영심과 자기만이 사라진 지금, 중년이 된 당신은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소설가 조지 오웰은 "누구나 중년이 되면 자기에게 어울리는 얼굴을 갖게 된다"라고 말했다.

 

 

"당신 참 열심히 살았군요!"

 

 

 

 

Posted by 제리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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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sec | F/2.8 | 3.9mm | ISO-80 | Off Compulsory

 

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 맡는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는 영원 회귀의 사상 무거운 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테를 드러낸다.

그러나 묵직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가장 무거운 짐이 우리를 짓누르고 허리를 휘게 만들어 땅바닥에 깔아 눕힌다.

그런데 유사 이래 모든 연애 시에서 여자는 남자 육체를 하중을 갈망했다.

따라서 무거운 짐은 동시에 가장 격렬한 생명의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이것이 기원전 6세기 파르메니데스가 제기했던 문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세상은 빛-어둠, 두꺼운 것-얇은 것, 뜨거운 것-찬 것, 존재-비존재와 같은

반대되는 것의 쌍으로 양분되고 있다.

그는 이 모순의 한쪽 극단은 긍정적이고 다른 쪽 극단은 부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이론은 모든 것을 긍정적인 것(선명한 것, 뜨거운 것, 가는 것, 존재하는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나누는 극단적 이분법이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로 안이하게 보일 수도 있다.

단 이 경우는 예외다. 무엇이 긍정적인가? 묵직한 것인가 혹은 가벼운 것인가?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답했다.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미묘한 차이는 존재하지만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도 있고 구별해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

권태안에서도 극복할 수 있고 행복을 찾아낼 수 있것만

순간의 즐거움과 자극만을 행복이라 착각하며 즐거움이라 쫓는 사람들..

순간의 즐거움은 있을지언정 그래서 자기만의 것이 없는 사람들은 늘 삶이 허무하다.

가끔씩은 EVEREST COFFEE와 함께 밀란 쿤데라를 만나 볼 필요가 있다.

 

 

 

 

Posted by 제리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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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amuse 2012.12.08 19: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서점에서 저책을 보았어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예전부터 유명한 책이었지만
    저렇게 근사한 표지로 다시 발매되니 정말 사고싶드라구용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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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 혹은 대중심리서를 많이 읽었거나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심리치료사들의 강의를

자주 들은 사람이라면, 인생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남들보다

더 잘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심리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경험한 일에 대해 비슷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10대 청소년 시기를 지날 때, 직업을 갖게 되었을 때,

과도한 업무에 시달릴 때 그리고 점차 나이를 먹어 늙어갈 때 등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표준적인 범주에서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인간의 DNA 차이로 인해 처방약에 대한 반응이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므로

같은 질병이라 해도 환잔에 따라 치료법과 처방약이 다르다고 안내한다.

물론 유전자가 동일한 사람은 없다는 매우 근원적인 전제하에 말이다.

예를들어, 환자의 혈전을 안전하게 예방할 수 있는 혈전치료제의 투여랑은 환자가 약물을 얼마나 빨리

흡수할 수 있는 유전자를 자졌는가에 달려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삶에서 맛보는 좌절이나 기쁨, 사회적 관계나 연인 관계 등에서 겪는 난관이나

즐거운 경험들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이를 어떻게 새로운 역량으로 키우는지는 개인마다 다르다.

사람마다 DNA가 다를 뿐만 아니라 뇌 활동의 패턴도 다르기 때문이다. 환자의 DNA를 해독하게

됨에 따라 미래 의학분야의 전개 방향이 달라진 것처럼, 우리 각자의 개성을 설명할 수 있는 정서적 기질과

정서 상태를 좌우하는 뇌의 특징적인 패턴을 이해함으로써 오늘날 심리학의 전개 방향이 달라지고있다.

 

유사한 배경에서 살아왔으나 동일한 인생 경험과 사건에 처했을 때 매우 극적으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목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스트레스에 직면했을 때 어떤 사람은 잘 극복했지만

어떤 사람은 완전히 무너졌다. 후자의 경우 그들은 매우 불안해하고 우울해하며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반면 전자는 좌절을 잘 극복하고 이겨낼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오리혀 이를

통해 이득을 보기도 했다. 이것이 수수께끼였다.

저자는 이혼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실직, 그 외에도 많은 좌절에 처했을 때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반응을 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고 한다. 반대로, 진정한 쟁취했을 때나 일에서

성공을 거두었을 때처럼 인생에서 좋은 일이 생길 때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나타내는 이유도

궁금했다고 한다. 왜 이처럼 수많은 삶의 굴곡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다양한 정서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연구를 통해 얻은 답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정서 유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서 유형은 그 종류와 강도, 지속 시간 등에 매우 다양한 정서 반응과 대처 대응력 등을

합한 것이다. 독특한 지문과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저마라 독특한 정서 프로파일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던 연인과 헤어지는 일처럼 아픔을 겪게 될 때도 어떤 사람은 굉장히 빠르게 회복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자기비하와 절망으로 나락에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를 파악하고 설명하는 데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정서 유형이다. 같은 부모님 밑에서 자란 형제와 자매라고 하더라도

누구는 실직을 해도 금방 떨치고 이어나는 반면, 누구는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자신이 무능력하다고

생각하면서 좌절하는 이유도 정서 유형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자녀가 학교야구 경기에 잘못된 판정을 받아 퇴장당한 상황에서, 그냥 무시해 버리는 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흥분해서 소리를 질러대는 아버지도 있다. 이 역시 정서 유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주변의 많은 친구들에게 끊임없는 위로의 원천이 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가족과 친구에게 절대적인 지지와 위로가 필요한 상황에서조차 냉랭하게 행동하는데, 이 역시

정서 유형의 차이에서 온다. 또 어떤 사람은 타인의 비언어적 표현과 목소리의 톤 등을 마치

광고판의 문구처럼 명확하게 읽어내는 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를 마치 제2외국어를 대하듯이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러한 차이도 정서 유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람의 반응을 결정하는 정서 유형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 수많은 질문이 쏟아질 수 있다.

청년기 초반에 분명히 드러나는 정서 유형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인가,

정서 유형이라는 것이 일생 동안 변하지 않고 계속 유지되는가 등의 질문들 말이다.

또 정서 유형이 신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서 유형의 차이가 뇌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다음에 따라나와야 할 질문은 정서 유형이 우리의 신경 회로와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정서 유형이 변화될 수 있는 것인지이다.

그리고 정서 유형은 변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가 삶의 희로애락을 다룰 수 있는지와 관련된

질문도 중요하다. 이제 뇌가 우리의 정서 유형을 어느 정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뇌는 변화를

어떻게 측정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남았다.

 

궁금하다면 리처든 J. 데이비드슨이 쓰신 '너무 다른 사람들'을 추천한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 1984년부터 현재까지 위스콘신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로 재직중이시다.  그리고 인간 뇌 활동에 관해 연구하는 와이즈먼 실험실과

신경과학적 정서에 관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Posted by 제리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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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는 그냥 가볍게 읽기 좋은것 같다.

하지만 그 가벼운 이야기 안에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메시지가 들어 있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중 '거울 속의 저녁노을'을 읽고 어젯밤 빵~~ 웃음이 터졌다.

바자회 가서 말할 줄 아는 개와 아내를 바꿔왔다니... 발상이 너무 재미있었다.

옛날 일을 생각하는 주인에게 개가 말한다.

"옛날 일 따위 되짚어 봤자 비참해질 뿐이죠. 참 이해할 수가 없네. 비참한 인간이 꼭 더 비참해지려고 하니....."

개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우리는 정말 옛날 일을 되짚으며 더 비참해지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을지 모른다.

앞으로 좋은 추억 만들어 나가기에 짧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건 지도....

아쉬움이 남든다면 다시 용기내서 도전하면 되는거고... 

후회가 남지 않게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털어내면 되는거고...

그렇게 난 개의 말에 깨달음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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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우리라 함은 물론 나와 개를 말한다) 아이들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오두막에서 나왔다.

내가 머리맡에 앉아 '1963년도 판 조선 연감'을 소리 내어 읽는 사이에(오두막에는 그것 말고 다른 책은 없었다)

아이들은 금세 잠에 빠져들어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총 배수량 23652톤, 전체 높이 37.63미터...." 따위의 문장을 주절거리고 있으면 설령 코끼리 떼라도 잠들어버린다.

"저, 주인어른." 개가 말했다. "산책이라도 하러 나가요. 오늘 밤은 달님이 무척 아름다워요."

"좋고말고."

이처럼 나는 말할 줄 아는 개와 생활하고 있다. 물론 말할 줄 아는 개는 극히 드물다.

말할 줄 아는 개와 살기 전에는 아내와 함께 살았다.

작년 봄 시내 광장에서 바자회가 열렸는데, 나는 거기서 말할 줄 아는 개와 아내를 바꿨다.

거래한 상대와 나 둘중 누가 이득을 보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아내를 사랑했지만, 말할 줄 아는 개는 그 무엇보다도 희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와 개는 강을 따라 비스듬한 언덕을 올라 그대로 숲으로 들어갔다. 때는 7월, 매미와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사방에

가득했다.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달빛이 오솔길에 드문드문 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걸으면서 나는 지나가버린

과거의 나날을 떠 올렸다.

"주인어른, 무슨 생각 하는데요?" 개가 물었다.

"옛날 일." 나는 대답했다. "젊었을 때 일"

"잊어버리세요" 개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옛날 일 따위 되짚어 봤자 비참해질 뿐이죠. 참 이해할 수가 없네. 비참한

인간이 꼭 더 비참해지려고 하니. 아시겠어요...."

"이제 그만해." 나는 말했다. 그러고는 잠자코 걸었다. 개는 주인에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아무래도 내가 개를 지나치게 오냐오냐 대한 것 같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 봄 바자회에서 또다른 무언가와 개를 교환하게 될 것이다.

아내를 되찾지는 못해도 하프를 켤 줄 아는 산양 정도는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개는 그런 나의 생각을 눈치챈 듯했다.

"그렇게 말할 생각은 아니었는데요." 개가 변명했다. "주인어른은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저만치 갔다가 돌아오자." 나는 말했다. "숲속의 밤은 무서우니까 말이야."

"정말 그래요. 숲속의 밤은 무섭죠." 개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밤의 숲속에서는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죠.

예를 들면 거울 속의 저녁노을이라든지..."

"거울 속의 저녁노을?" 나는 깜작 놀라 되물었다.

"그런 게 있어요. 오래된 전설이죠. 엄마 개가 강아지들을 겁주려고 할 때 흔히 하는 얘기에요."

"흐흠." 나는 웅얼거렸다.

"어때요. 이쯤에서 조금 쉬어갈까요?"

"좋고 말고." 나는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거울 속의 저녁노을 얘기를 좀더 자세히 들려주지 않을래?"

"내년 봄 바자회에 절 내놓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신다면요. 저, 이 나이에 또 개장에 갇혀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 않거든요."

"약속하지" 나는 말했다.

개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발에 묻은 흙을 나무뿌리에 비벼 털어내고서 천천히 얘기를 시작했다.

" 이 부근 개들은 다 아는 얘기예요. 이 드넚은 숲속 어딘가에 수정으로 된 작고 동그란 연못이 있대요. 수면은 마치

거울처럼 매끈매끈하고요. 그리고 거기에 늘 저녁노을이 비친다는 거예요.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늘 저녁노을이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글쎄요." 개는 으쓱했다. "아마 수정이 기묘하게도 시간을 빨아들이는 모양이죠. 정체 모를 심해어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그건 아주 위험하겠지?"

"네, 그 광경을 본 사람은 모두 거기로 뛰어들고 싶어진대요. 아무튼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운 저녁노을이거든요. 그리고

한번 뛰어든 사람은 영원히 그 저녁노을의 세계 속을 헤매다니게 되죠."

"그리 나쁘지 않은데."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개는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하지만 대개의 일들은 실제로 해보면 생각했던 것만큼

재미있진 않은 법이죠. 두 번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경우에는 더더욱이요."

"난 저녁노을 좋아해."

"참 나, 저는 뭐 안 좋아하는 줄 아세요."

한동안 나는 말없이 담배를 피웠다. "그런데, 넌 실제로 그.... 거울 속의 저녁노을이란 걸 본 적 있니?"

"아니요." 개는 고개를 저었다. "본 적은 없어요. 부모님에게서 얘기를 들었을 뿐이죠. 부모님은 또 그 부모님에게서 들었고요.

말했잖아요. 오래된 전설이라고."

"그걸 본 개는 없단 말이지?"

"그걸 본 개는 모두 그 저녁노을 속으로 끌려들어갔다니까요."

"알 것 같기도 한데"

"사람이건 개건 생각하는 건 얼추 비슷하죠." 개가 말했다. "자 이제 그만 돌아가요."

우리는 왔던 길을 되짚어 묵묵히 걸어갔다. 풀고사리 잎이 밤바람에 바닷물처럼 일렁이고, 새하얀 달빛 속에 꽃향기가

떠다녔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가까워졌다가는 멀어지고, 밤의 새는 금속 조각을 비벼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울었다.

"피곤하세요?" 개가 물었다.

"괜찮아." 나는 말했다. "기분이 아주 상쾌하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개는 말했다.

"그건 그렇고." 나는 말했다. "아까 한 얘기, 전부 네가 멋대로 꾸며닌 거지?"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왜....."

"괜찮으니까 사실대로 말해봐."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눈치채셨어요. 역시?"

"당연하지."

개는 떨떠름하게 웃으며 머리를 갈작갈작 긁었다. "그래도 재미나는 얘기였죠?"

"하긴." 나는 말했다.

"하지만 잊어버리면 안 돼요. 내년 봄 바자회 얘기 말이에요. 주인어른이 틀림없이 약속하셨으니까."

"알고 있어."

"개장 안에만은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개는 말했다.

우리는 오두막까지 남은 길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었다. 아무튼 달이 지독히도 아름다운 밤이었다.

 

 

 

 

Posted by 제리 bluejerry
TAG 생각,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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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 감정이 오가는 송신기요, 수신기다.

눈을 통한 감정의 교류는 동물도 할 수 있지만,

서로 꼭 잡은 손은 동물이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교류방식이다.

손을 잡는 것은 오로지 인간만이 가능한 통신 수단이다. 부부나 연인끼리 손을 맞잡고 걷는 것은 필수다.

팔짱을 끼는 것은 이별과 분리에 대한 거부의 몸짓이며, 의존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서로 손을 맞잡은 것은 애정의 확인이며, 혼자가 아님을 선언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신분석에서 다루는 핵심적인 감정 가운데 하나가 '이별 불안'이다.

이 불안은 엄마에게서 떨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걸음마를 배울 때

넘어지면 엄마가 곧바로 달려와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준다.

엄마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믿음이 우리를 안심하게 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모든 사물에 대한 신뢰감을 심어주는 초석이 된다.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나중에 커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손을 잡고 걸어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걸어라.

중요한 것은 둘이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걸어간다는 것이다. 마냥 마주보고 걷기만 하면 앞을 보기 어렵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남녀가 서로 포옹하고 키스하는 장면이 아니라,

서로 손을 꼭 잡고 정겹게 걸어가는 모습이다. 손을 마주잡고 오래도록 걸을 수 있는 남녀는 행복하다.

물론 애들을 낳으면 엄마, 아빠 사이에 끼어들어 둘 사이를 떼어놓으려 들지만

애들이 다 크고 나서도 여전히 부부가 서로 손잡고 걸을 수 있다면,

그리고 백발이 되어서도 계속 그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을까.

그럴 수 있는 손이라면 서로 가려운 등을 긁어줄 수도 있고, 서로 손톱을 깎아줄 수도 있으며,

서로 때를 밀어줄 수도 있는 법이다. 더 나아가 서로 힘겨울 때 등을 토닥여주고 포용해주며 땀을 닦아줄 수도 있다.

그러니 손으로 절대로 폭력을 써서는 안된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접시를 집어던지고 상대의 목을 조르거나 따귀를 올려서는 안 된다.

이런 습관이 한 번 붙으면 정말 고치기 어렵다. 발을 쓰는 것은 더 나쁘다.

밥상을 뒤엎는 일처럼 인간이 추해보이는 장면도 없을 것이다.

부부 간에 언쟁은 피할 도리가 없는 일이지만, 설사 그렇다 쳐도 입에 담을 수 없는 상욕은 할 짓이 아니다.

 

분이 풀리지 않으면 차라리 집밖으로 나가 한 바퀴 바람을 쏘이고 오는 것이 낫다.

공원 벤치에라도 앉아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 상대의 손을 잡고 "내가 잘못헀어, 미안해"라고 말하면 둘 사이의 문제는 눈 녹듯 사라진다.

우리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살다보면 사랑과 미움의 감정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정신분석이 추구하는 최종 목적도 완벽한 인간, 완벽한 삶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사랑과 미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서서히 자기 스스로를 달래기도 하고 추스르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미로의 과정을 통해 마지막 도달하는 깨달음은 상대에 대한 고마움이다.

 

신기한 마술쇼에 푹 빠진 애들은 마술사의 손을 의심하지 않는다.

부모의 사랑에 푹 빠진 애들 역시 부모의 손을 의심하지 않는다.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혼이 날 때조차도

부모의 손에 들린 회초리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래도 부모님이 변함없이 자신을 사랑해줄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부부도 마찬가지다.

힘겨울 때일수록 손을 내밀어 잡아주고 이끌며 보듬어주는 부부는 진정한 사랑의 마술사들이다.

어쩌다 실수해도 서로를 믿고 그냥 넘어가주는 아량을 보인다.

인간은 진공관 속에 채워진 증류수가 아니다. 온갖 오염된 세상 속을 헤치며 살아가는 생리적 식염수다.

그토록 험한 세파를 헤치고 나가려면 혼자 힘으로는 너무 벅차다.

그래서 서로를 잡아주는 손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고 세수하고 밥을 먹고 옷에 단추를 끼우고 구두끈을 맨 후 대문을 나서며 손을 흔든다.

아침마다 헤어지지만 저녁에는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과 안도감으로 그렇게 부담없이 헤어진다.

그런 애틋한 손길이 과연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마지막 숨이 넘어갈 때 곁에서 손을 잡아주며 두번 다시 잡을 수 없는 그 손을 영원히 놓아야만 한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할까? 그러니 우리의 손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그러니 따스한 마음이 담긴 부드러운 손길에 인색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언젠가는 잡고 싶어도 쓰다듬고 싶어도 더이상 그럴 수 없는 시간이 온다고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가.

그러니 주저하고 망설일 필요가 없다.

매일같이 손을 잡고 실컷 걸어라.

그렇게 손잡고 하염없이 걷다보면 모든 허물도 허세도 만용도, 그리고 온갖 이기심과 자존심도

그야말로 눈앞에서 홀연히 사라지는 법이다.

 

-프로이트를 알면 사랑이보인다-

 

 

 

 

Posted by 제리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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