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향기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늙지 않는다.

내게 크리스마스 선물은 조말론 향수 '블랙베리엔베이', '라임바질엔만다린' 디퓨저.

디퓨저 덕분에 온 집안이 향기로 가득하고 조말론에 흠뻑 빠져서 몽땅 수거해와야겠단 욕심이 생긴다.

 

 

 

 

 

 

 

어디 허름한 식당 없어?

허름한 데로 가자.

허름한 것이 좋다.

허름하다는 것은 반짝반짝 새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헌것, 낡은 것, 오래되고 가난한 것은 그 시절에 더 뜨겁고 정답고 치열했을 것이다.

악착같이 서로를 나누어가며, 아껴가며, 서러움과 연민,

욕지거리와 난장과 뜨거운 눈물범벅을 꼭꼭 씹어 삼켜가며

그럼에도 내팽개치지 않은 생의 육자배기가 그곳에 있을 것이다.

겹겹이 쌓인 먼지의 시간만큼 사랑하였을 것이다.

 

허름한 추억이 없어서 내 감정은 이렇게 가난하다.

그러니 나랑은 허름한 곳으로 가자.

반질반질 닳은 탁자에 앉아서 찌그러진 냄비에 팔팔 끓고 있는 찌개 한 숟가락 떠먹으면서,

짝 안 맞는 젓가락으로 김치 꽁다리 찢어 먹으면서 허름한 것들의 노래를 좀 듣자.

웅숭깊은 그 노래 들으면서 나도 좀 걸쭉하게 울어보자, 한번.

우리는 본래 허름한 사람이었다.

 

-양양 <쓸쓸해서 비슷한 사람>-

 

 

 

 짙은 콘서트는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짙은    -잘 지내자, 우리
 
사랑의 단상 Chapter 5. - The Letter From Nowhere

 


마음을 다 보여줬던

너와는 다르게

지난 사랑에 겁을

잔뜩 먹은 나는

뒷걸음질만 쳤다

 

너는 다가오려 했지만

분명 언젠가

떠나갈 것이라 생각해

도망치기만 했다

 

같이 구름 걸터앉은

나무 바라보며

잔디밭에 누워

한 쪽 귀로만 듣던

달콤한 노래들이

쓰디쓴 아픔이 되어

다시 돌아올 것만 같아

 

분명 언젠가 다시

스칠 날 있겠지만

모른 척 지나가겠지

최선을 다한 넌

받아들이겠지만

서툴렀던 나는 아직도

기적을 꿈꾼다

 

눈 마주치며 그땐

미안했었다고

용서해달라고

얘기하는 날

그때까지 잘 지내자

우리, 우리

 

지금 생각해보면

그까짓 두려움

내가 바보 같았지 하며

솔직해질 자신 있으니

돌아오기만 하면 좋겠다

 

분명 언젠가 다시 스칠

날 있겠지만

모른 척 지나가겠지

최선을 다한 넌

받아들이겠지만

서툴렀던 나는 아직도

기적을 꿈꾼다

 

눈 마주치며

그땐 미안했었다고

용서해달라고

얘기하는 날

그때까지 잘 지내자

우리, 우리

 

눈 마주치며 그땐

미안했다고

용서해달라고

이야기 하는 날

 

그때까지

잘 지내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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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리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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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 새벽4시를 들으며..

향취와 여운이 숨어있는

마음 산책같은 음악.

마치 봄을 기다리듯 솔직한 자기 고백같은..

그 고백을 글로 담아 편지 받은 느낌이다.

이번 앨범도 ^___^)b

 


나는 위대한 인물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나와의 유사성이 너무나 없기 때문인가 보다.

나는 그저 평범하되 정서가 섬세한 사람을 좋아한다.

동정을 주는데 인색하지 않고 작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곧잘 수줍어하고 겁 많은 사람, 순진한 사람,

아련한 애수와 미소 같은 유머를 지닌

그런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찰스 램'

그는 오래된 책, 그리고 옛날 작가를 사랑하였다.

그림을 사랑하고 도자기를 사랑하였다.

작은 사치를 사랑하였다. 그는 여자를 존중히 여겼다.

그의 수필 '현대에 있어서의 여성에 대한 예의'에 나타난 찬양은 영문학에서도 매우 드문 예라 하겠다.

어린 굴뚝 청소부들도 사랑하였다.

그들이 웃을 때면 램도 같이 웃었다.

그는 일생을 런던에서 살았고, 그 도시가 주는 모든 문화적 혜택을 탐구하였다.

정치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자기학교, 자기 회사, 극장, 배우들, 거지들, 뒷골목 술집, 책사,

이런것들의 작은 얘기를 끝없는 로맨스로 엮은 것이

그의 '엘리아의 수필'들이다.

 

그는 램이라는 자기 이름을 향하여

"나의 행동이 너를 부끄럽게 하지 않기를. 나의 고운 이름이여" 라고 하였다.

그는 양과 같이 순결한 사람이었다.


-피천득 <인연> 찰스 램 -

 

요즘 꺼내고픈 '인연' 구절로

지친하루 '토닥토닥'.

 

 

 

 

 


김진호 -새벽4시

 

아직 잠들지 못한 나에 가슴속에

미련들이 차 오를때

이런 내 모습

어느새 무뎌져 버린지 오래

오늘도 술한잔 생각이 나

 

잘 모르겠어 나로 인한

내 불안도 내 방황도

나도 모를 외로움에 사무칠때

너에게로 나 다시 돌아가

 

니가 생각나 난 노래해

이 시간이 다가올때

나도 모를 내 모습에 헤매일때

약해빠진 나 누가 안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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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리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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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재능은 사람들 머리 속에 기억 되지만

당신의 배려와 인간적인 여백은 사람들 가슴 속에 기억 됩니다. 

가슴으로 당신을 기억 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당신 편 입니다.

- 이철환 <못난이 만두 이야기> -

 

 

 

 

 

제 취향이 이상한지라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역시 상영관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상영관이 늘어났네요. ㅡ,.ㅡ

생일선물로 받았던 티켓도 유효기간이 다 되어가고

폭풍마감을 끝내고 영화관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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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티와 멘토의 모습.

영화속 이야기에서 또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단 느낌인데 복잡하신가요?

 

영화 보는 내내 시간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눈을 깜빡 거리는 것 조차 조심스러웠다고 할까요?

행여나 장면을 놓칠까 싶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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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 누군가 내게 그림 동화책을 읽어주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점점 다음 장면이 궁금해지고..

"그래서요? 그 다음은요? 빨리 빨리 읽어주세요"

영화가 끝나고

"더 읽어주세요~~ 또 읽어 주세요~~~"

 

 

 

 

 

 

 

Posted by 제리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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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인생 -프리드리히 횔덜린-

 

노란 배가 열리고

들장미가 만발한

대지는 호수에 매달리네.

우아한 백조들은

입맞춤에 취한 채

신성하게 깨어있는 물속에

머리를 담그네.

허나 겨울이 오면, 내 어디에서

꽃을 찾고, 어디에서

햇빛과 대지의 그늘을 찾을까?

장벽은 말없이 차갑게 서 있고,

바람결에 풍향계는 달그락거리네.

 

 

 

1/15sec | F/2.4 | 4.1mm | ISO-80 | Off Compulsory

 

기억에는 또 다른 변덕스러운 특성이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기억하기를 바라는가의 문제는 얼마나 많은 기억을 견디는가의 문제와

맥락을 같이 해야 한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망각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억하는 것이 언제나 좋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망각할 줄도 알아야 한다.

잊어버리는 방법을 모르면 자신이 다른 사람의 삶에 얼마나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쳐왔는지 직시하게 된다.

이런 상황은 반대의 상황, 즉 다른 사람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악영향을 미쳐왔는지 깨닫는 것 보다 훨씬 더 견디기 어렵다.

사람들이 기억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으로 인해 통제력과 자유가 생긴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언가를 기억한다면 언젠가는 내가 누구인지를 한층 더 잘 파악하고 통제할 줄 알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순진할 정도로 낙천적인 생각인 것도 맞다.

달리 생각해서 내가 누구인지를 더 잘 파악하게 된다면 오히려 절망감을 느끼는 수순을 밟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저지른 끔찍한 일들을 기억한다고 해서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상처를 주었는지,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납득해버린다면 도리어 그런 행위를 다시 할 가능성이 한층 더 커질지도 모른다.

자신이 지금껏 저지른 일을 정제(精製)하여 인식하다 보면 자기 기만을 고치기 더 힘들어지고

잘못을 자각하기가 한층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지금 하는 행동을 감지하는 정제된 감각이 스스로를 속여 내가 옳은 일을 한다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

핵심을 오해하지 말라.

기억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기억할 때와 망각할 대를 구분하라는 의미이다.

물론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언제나 이리저리 흔들리겠지만 그래도 항상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의 경우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친아버지가 다름 아닌 H란 사람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쁘냐는 질문을 받는다. 어떤 이는 사실을 모르는 게 더 좋았을 것 같은지 물었다.

나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모르던 시적의 기분을 기억해내야 한다. 그래야 사실을 아는 경우와 모르는 경우가

본질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조금이나마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나는 더 이상 사실을 몰랐던 시적의 기분을 기억하지 못하므로 어느 편이 더 좋은지 말하지 못한다.

지금도 진실을 알지 못했다면 기분이 어떠했을지 상상할 수 없다.

지금은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상상력이 모자라거나 없어서그렇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주길.

상상력보다는 기억력의 특성과 관련된 문제이니까. 기억력 자체가 상상력을 제한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정한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쓰면서 기억이라는 함정에 스스로 갇혀버렸다.

망각하기 위해서 이 모든 일을 기억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에서 지난 일들을 지워버리기 위해 글은 쓴다. 하지만 지난 기억들을 잊어야만 한다면

나는 더 이상 지금의 내가 아니리라. 그리하여 나의 기억하기 행위는 동시에 망각하기가 될 것이다.

이는 기억이 망각의 수단이라서가 아니다. 애초에 기억과 망각은 둘이 아닌 하나의 동일한

존재가 될 운명을 타고났다. 완전한 자기 일치와 자기 치환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더이상 지금의 내가 아니기를 바란다는 뜻일까? 아니, 나는 지금 그대로의 나이면서

동시에 지금의 나에게서 자유로워지기를 원하다. 아마도 중년이란 시기가 이런 환상이 펼쳐지는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의 변덕스러운 특성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청춘에 비해 중년에 무언가를 많이

상실한다는 현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청춘이란 과연 무엇이며 중년이 되면 정확히

무엇을 잃어버리는지를 명확하게 밝히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그저

어떤 기분을 잃어버리는지도 모른다. 정확히는 청춘의 기분이다.

그리고 이런 기분은 그 자체로 산만하고 모호하다. 만약 열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는 향수와 상실감의 중심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전체적으로 특성이 없고 전혀

특별하지 않은 존재인 자신의 청춘뿐이라고 대답하리라.

때로 우리는 이러저런 순간이 행복이나 자유라고 정해버리고 이것을 잃어버려서 후회스럽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지난 일을 후회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느꼈던 청춘의 기분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중년에

상실감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말하지 못한다.

같은 의미에서 우리는 음악 한 소절, 시 한 구절에 감동받을때 느끼는 감정을 한가지 방식으로만 받아들인다.

음악이나 시의 어떤 부분이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지 말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물론 단 한 마디의 설명도 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대체적으로 무엇으로 인해

감동을 받는지 제대로 이해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청춘의 기분 역시 아무리 묘사하려고 노력해도 그저 막막할 뿐이다. 어쩌면 삶이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다거나

그것이 망쳐지기 전에 느꼈던 기분이라고 설명할 사람도 있으리라. 이를테면 삶이란 온통 타협과 손상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파악하기 전의 기분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미 말했듯 우리는 이보다 더 정확하게

묘사할 능력이 없으므로 언어 자체가 점점 멀어지는 먹먹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가 바닥이 나거나

적절한 단어를 되찾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것은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의 상태가 감정, 기분 등을

정확히 설명할 말이 없다는 인식만이 아니다. 마치 언어가 세상을 더 이상 파악하지 못하는 듯한,

마치 세상이 언어 위에서 미끄러지거나 다시는 영향을 받지 않을 듯한 느낌이다.

어쩌면 이런 기분의 모호함은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인 장아메리가 제시한 몇 가지 생각으로 인해

다소 희석될 수 있다. 그는 노화에 대한 연구를 담은 저서 '노화에 관하여(On Ageing)'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젊은이들이 허둥지둥 휘말리는 미래란 결코 시간이 아니다.

이것은 세상이며, 보다 정확히 말하면 공간이다.

젊은이들은 앞으로 시간이 창창하다고 제 스스로 말한다. 하지만 이들의 앞날에 정말로 놓인 것은

세상이다. 이들은 세상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세상의 평가가 내려지도록 내버려둔다. 나이든 사람들은

시간이 등 뒤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지만 더 이상 절실하게 살아지지 않는 삶이란 그저 차곡차곡 모인,

살아온, 흘려버린 시간에 불과하다. 우리 앞에 남은 시간이 적다고 생각할수록 우리 내면의 시간은

더욱 많아지는 법이다. (...) 나익 드는 것 또는 단지 늙어간다는 기분이 드는 것조차도 사람의 몸과

영혼에 시간이 있다는 뜻이다. 젊다는 것은 결코 시간이 아닌 인생이자 세계요, 공간인 한 시절속으로

자신의 몸을 디던지는 것이다.

 

나이든 사람들의 현재와 미래는 과거에 집어 삼켜진다. 나이든 사람은 내면에 시간이 있다.

중년이란 압박이 시작되는 시기이며, 중년인 이들은 현재와 미래가 과거의 뒤안길에서

날아온 압박에 옭아매 진다고 느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젊은 시절 즐겨 듣던 음악에 다시 심취하면서

서서히 짙어지는 중년의 향수는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해로울 수밖에 없다. 음악이 잃어버린 세계를

되돌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애초에 있는 그대로 경험했던 세상이다. 그리고 이제는

시간 안에 있는 세상 즉, 인간 내면에 있는 시간 속으로 깊이 스며든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이현상은 심리적인 모순 혹은 정신적인 모순이다.

인간이 공간이나 시간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깨닫는 순간은 세상을 상실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이때 인간은 마치 옴짝달짝할 수없을 정도로 질척한 액체로 점점 채워지는 세상 속에 떠 있는

빈 배와도 같다. 이처럼 중년은 서서히 멈춰가는 기분을 느끼는 시기다.

-크리스토퍼 해밀턴 <중년의 철학>-

 

 

중년이란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중년은 신체의 기능이 정점에 도달하는 동시에 붕괴가 시작되는 시기이다.

보통 이 시기가 되면 지나온 인생의 궤적과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한다.

때로는 시간이 알마 남지 않았다는 조급한 마음 때문에 심각한 불신과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기도 한다.

중년에 느끼게 되는 다양한 감정들, 예를 들어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

계획했던 일을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감, 후회, 외로움, 자아 상실감 등은 대부분 어둡고 비관적이다.

그러나 이는 가족을 위해, 부모를 위해 그리고 야망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질 수 있는 값진 감정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크리스토퍼 해밀턴은 자신이 중년이 되었을때 느꼈던 생각과

기분을 철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했다.

그 결과 쇼펜하우어, 니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라킨, 엘리엇에 이르는

위대한 사상가들이 '중년의 위기'에서 빠져나오게 된 순간을 예리하게 찾아냈다.

젊은 날의 허영심과 자기만이 사라진 지금, 중년이 된 당신은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소설가 조지 오웰은 "누구나 중년이 되면 자기에게 어울리는 얼굴을 갖게 된다"라고 말했다.

 

 

"당신 참 열심히 살았군요!"

 

 

 

 

Posted by 제리 bluej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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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먹었다고 비타민을 열심히 챙겨먹었더니

안걸리던 몸살 감기가 지독히 걸렸다.

물만 닿아도 "아파" 소리가 절로나니... 이건 뭐....

 

드라마 '연애시대'를 다시보기 결제했다.

다시봐도 이쁘고 풋풋하고...

주옥같은 나래이션에

선선한 바람부는 이 가을에 감성자극 충만한 '연애시대'

 

 

 

어디서부터가 사랑일까.
걱정되고 보고싶은 마음부터가 사랑일까.
잠을 설칠 정도로 생각이 난다면 그건 사랑일까.
어디서부터가 사랑일까.
오랜 시간이 지나 뒤돌아봐도 그래도 가슴이 아프다면 그게 사랑이었을까.
그건 사랑이었을까.

 

지구상에 65억 인구가 있고 신이 아무리 전지전능하다지만
그 많은 사람의 앞날을 미리 알고 정해 놓을리가 없다.
그런 불필요한 수고를 할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그것은 운명이었다고 믿고 싶어질때가 있다.
지난 날을 돌아보며 그것은 운명이지 않았을까 변명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다른 길을 선택할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잊어버린 채,
그 순간의 그 인연의 깊이와 무게가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워지고 감당할 수 없을때,
누군가 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을때,
내가 그 누군가의 인생을 완전히 틀어 놓았다고 밖에 할 수 없을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선명해지고 중요해지는 순간을 돌아보며
차라리 그런 만남은 운명이었다고 눈 돌리고 싶어진다.

 

기억이란 늘 제멋대로다.
지난날의 보잘것 없는 일상까지도 기억이란 필터를 거치고 나면 흐뭇해진다.
기억이란 늘 제멋대로여서 지금의 나를, 미래의 내가 제대로 알리 없다.
먼 훗날 나는 이때의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가끔은 시간이 흐른다는 게 위안이 된다.
누군가의 상처가 쉬이 아물기를 바라면서.
또 가끔 우리는 행복이라는 희귀한 순간을 보내며,
멈추지 않는 시간을 아쉬워 하기도 한다.

 

산다는 건 어차피 외로움을 견디는 것.
누군가가 그랬지..
지구에 4억 인구가 있다면 4억개의 고독이 있다고...
우리는 어설프게 이기적이고 결국 상처를 입혔다.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어떤 시간은 사람을 바꿔 놓는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랑은 시간과 함께 끝나고, 어떤 사랑은 시간이 지나도 드러나지 않는다.
언젠가 변해버릴 사랑이라해도 우리는 또 사랑을 한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것처럼..
시간이라는 덧없음을 견디게 하는 것은 지난날의 기억들.
지금 이 시간도 지나고 나면 기억이 된다.
산다는 것은 기억을 만들어 가는 것.

 

우리는 늘 행복한 기억을 원하지만, 시간은 그 바램을 무시하기도 한다.
일상은 고요한 물과도 같이 지루하지만 작은 파문이라도 일라치면
우리는 일상을 그리워하며 그 변화에 허덕인다.
행운과 불행은 늘 시간 속에 매복하고 있다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달려든다.
우리의 삶은 너무도 약하여서 어느날 문득 장난감처럼 망가지기도 한다.
언젠가는 변하고 언젠가는 끝날지라도
그리하여 돌아보면 허무하다고 생각할지라도
우리는 이 시간을 진심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슬퍼하고, 기뻐하고, 애달아하면서.
무엇보다도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고통으로 채워진 시간도 지나고,
죄책감 없이는 돌아 볼 수 없는 시간도 지나고
희귀한 행복의 시간도 지나고, 기억되지 않는 수많은 시간을 지나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우리는 가끔 싸우기도 하고
가끔은 격렬한 미움을 느끼기도 하고
또 가끔은 지루해하기도 하고
자주 상대를 불쌍히 여기며 살아간다.

 

시간이 또 지나 돌아보면 이때의 나는 나른한 졸음에 겨운 듯
염치없이 행복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가 내 시간의 끝이 아니기에 지금의 우리를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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